<만언각비 69>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인류 과학계와 문명사에 일대 전환을 불러온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이 말은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새해 벽두 새로운 마음가짐과 각오를 다지기 위한 밑거름으로 적절한 말이지 싶다. 물론 그 말의 배경을 알면 좀 복잡해지기는 한다. 과학이론 가운데서도 자주 첫손에 꼽히는 게 양자론이다. 그런데 그 양자론을 논하면서 인과법칙이 아니라 확률로 얘기하는 불확정성과 무작위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거부의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라는 반박도 같은 맥락이다. 관찰자의 관찰행위에 따라 실제 상태가 바뀐다는 양자론 세계의 모호성을 두고 아인슈타인은 이처럼 비꼬았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신은 기독교적 신이나 의인화된 신의 개념이 아니다. 무신론자였고 사회주의자였던 아인슈타인이 얘기하는 신은 그가 공감했던 스피노자의 신, 즉 우주를 채우고 있는 실체, 곧 자연법칙에 가깝다. 진리를 좋아하고 믿고 따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주사위 놀이는 어디까지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사위 놀이보다는 진리가 더 진지하고 설득력 있다. 하지만 세상에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자신의 억지가 먹히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그렇다.

마오(), 유일한 업적은 죽은 것이다

산둥건축대의 예술학원 부원장 덩샹차오(鄧相超) 교수가 마오쩌둥 탄생 123주년인 20161226일 웨이보(트위터식 SNS) 계정에 올린 글이다.

()1945년에 죽었다면 중국인 60만명이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을 겪지 않아) 덜 전사했을 것이고 1968년에 죽었다면 3천만명이 (대약진운동을 겪지 않아) 덜 굶어죽었을 것이고, 1966년에 죽었다면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아) 덜 죽었을 것이다. 그가 제대로 한 유일한 사건은 죽은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제각각이겠지만 덩교수의 위 주장은 논법상 매우 타당하다. 결국 중국 국민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덩교수의 생각을 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은 탄핵돼 물러나는 것이다. 도무지 국민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준 업적이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은 매양 나라와 국민을 위해 단 한순간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강변해댄다. 억지와 궤변의 극치다. 신년 벽두에 상서로운 덕담만 해야 하겠지만 뒤집어보면 박대통령이 현직에서 사라지는 것이 국민에겐 상서로운 일이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새해를 맞은 국민에게 큰 선물이 곧 퇴진이다.

정사역천 묘계질서(精思力踐 妙契疾書)’고 했다. ‘생각을 정밀하게하고 실천에 힘쓰며 깨달음이 있으면 재빨리 썼다는 뜻이다 . 조선의 선비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조언한 말이다. 깨달음은 섬광처럼 왔다가 오간데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묘계, 즉 오묘한 깨달음은 잘하기가 어렵지만 질서, 즉 빨리 써두기는 쉽기 때문이다.

북송 때 철학자 장횡거(張橫渠)는 우주론 존재론 인성론을 풀이한 철학서 정몽(正蒙)’을 지을 적에, 거처의 곳곳에 붓과 벼루를 놓아두었다가 자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곧장 촛불을 켜고 그것을 메모해두고는 했다. 그렇게 얼른 써두지 않으면 바로 잊어버릴까 염려해서였다. 그만큼 메모하고 생각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빼어난 사상가들도 이처럼 한 가지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여 메모하고 집중했다.

 

()가 어디에 있는가. 따로 켯속을 재고 날마다 그것을 찾으려 공부하고 수련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손쉽게 찾아지진 않는다.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로는 아마 장자(莊子)가 제격이다.

동곽자(東郭子)가 장자에게 도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장자는 냉큼 도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종국에는 오줌이나 똥 속에도 도가 있다고 설파했다. 도재시뇨(道在屎溺). ()란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참으로 간명했지만 어디 그런 경지가 아무나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잘 모르기에 우리는 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하여 고상하고 고원한 데서 찾으려 든다. 도 또는 진리란 과연 저 높은 곳, 아니면 저 먼 곳에 있는 것인가.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은데. 장자 선생의 가르침은 그저 가깝고 쉬운 데서도 도는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이전에 노자(老子) 선생도 설했다. ‘도를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꼭 도라고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려 때 어느 고승에게 후학인 중이 도에 대하여 물었다. 고승은 겨우 밥을 먹었는가를 묻고, 발을 씻었는가를 물은 다음 됐다. 그럼 가서 자거라고 했다던가. 한낱 평범하고 밋밋한 대화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미 그 고승은 큰 도를 알고 행하며 가르쳐 준 거다.

도가 어디 있는가를 애써 물으려 할 것은 없다. 이미 그 물음에 해답은 벌써 들어있는 것 아닌가. 누가 가르쳐줘야만 알 것도 아니므로 구태여 물을 것도 없다. 그렇다고 묻지 못할 것도 없다. 오로지 도가 없는 곳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아는 것도 도를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장자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도()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그래서 노자의 무위(無爲)사상을 잇는다. 그렇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였다고 한다.

장자의 도는 ‘하나이고 전체 이므로 즉, ()이며 대전(大全)이므로’ 도의 대상이 없다.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지극한 도란 모든 것 속에 있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너도나도 도덕을 외친다. 그렇다면 큰 책임을 가진 자의 도덕은 어떠해야 하는가. 허나 일개 범부도 아닌 막중한 책임을 지닌 대통령이 도덕관념은 영 찾을 길 없다.

사심이 없고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일을 허정염담(虛靜恬淡)이라 한다. 스스로를 공허하게 하여 마음에 품은 바가 없고 담박무위(淡泊無爲)하게 갖추는 일이다. 노장(老莊)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경지는 대통령에게 종무소식이다. 그러면서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나라와 국민이다.

 

()은 중국 촉한(蜀漢) 승상 제갈량의 아들이다. 제갈첨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재능도 학습도 뛰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잘 난 아버지 덕분에 가슴 깊이 채움은 가득 있으되 스스로 비움을 몰라 불쑥불쑥 교만함이 대인관계에서 장애로 드러나곤 했다. 아이 때 똑똑하고 조숙한 아들은 성장할수록 목이 말처럼 뻣뻣해지고 교만해진다. ()보다, 관찰하다라는 뜻이다. 세상을 잘 보고, 잘 관찰하라는 의미에서 제갈량이 이름을 지었다. 제갈첨의 자()는 사원(思遠)이다. 사원은 멀리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남들의 눈에도 첨은 한마디로 교만하게 보였던 거다. 제갈량은 그렇게 아들의 이름과 자에 신경을 썼다. 유비를 주군으로 모신 후 2인자로서 제갈량은 평생 조심스럽게 삼가는 성격의 소유자로 살았다. 제갈량이 결국은 출전한다. 그 때 형 제갈근에게 편지를 썼다. ‘첨은 지금 벌써 여덟 살이 되었고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그가 조숙하여 중요한 인재가 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사랑스러운 아들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편지를 쓰고 난 다음에 따로 제갈량은 여덟 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다. 그 유명한 제갈량의 훈육의 편지 계자서(誡子書)’. 한자로 총 86자다.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제갈무후집(諸葛武侯集) 계자편서(誡子篇書)에 나온다.

이 글은 무릇 군자의 처신(處身)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길러야한다(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徳)고 시작한다. 이어 마음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할 수 없고(非澹泊無以明志)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포부를 멀리 펼칠 수 없다(非寧靜無以致遠)고 설파한다. 이를 압축한 여덟 글자가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이다. 뤼순(旅順)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가 사형집행 전날에 휘호로 써서 전해 오는 글로도 유명하다. 이 여덟 자는 압권으로 수많은 선비들과 세인들에게 모두 경종을 울렸다. 한국의 애국지사와 지식인들도 무척 좋아했다.

어쩌면 제갈량이 평생 심득한 내용이리라. 이 여덟 글자를 알면 아들 첨의 운명이 자신처럼 나라를 구하는 광명으로 바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었다. 여덟 살 어린 소년 첨은 장성해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었다. 첨은 열일곱 살 때 장가를 들었다. 아버지를 잘 둔 덕분에 공주(유비의 손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벼슬에도 올랐다. 곧 이어서 여러 차례 승진을 해 상서복야가 됐다. 게다가 아버지 제갈량처럼 군사장군이 되었다. 학문과 재능, 총명함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유로 촉한의 수많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마침내는 촉한의 2대 황제 유선으로부터 아버지가 누렸던 모든 작위를 고스란히 이어받게 된다. 제갈첨의 정치 영향력은 최대한 커졌다.

위나라 장군 등애가 쳐들어왔다. 황제의 명을 받고, 제갈첨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전선으로 내달렸다. 병사들과 함께 부현에 주둔했는데 촉한의 선봉대가 그만 무너져 패했다. 할 수 없이 군사를 물렸다. 그 때 등애로부터 첨에게 편지가 당도했다. 내용인 즉, “만일 항복하면 반드시 표를 올려 낭야왕으로 삼겠다.”였다. 편지를 보자마자 첨은 흥분했다. 매우 화가 났다. 편지를 가지고 온 등애의 사자의 목을 베었다. 이윽고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이때 제갈첨은 싸우다 장렬하게 죽고 만다.

제갈첨은 아버지 명성 덕분에 출세하고 부마까지 되었으나 혼자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재능과 총명함은 뛰어났으나 인격 수양은 별로였다. 허명(虛名)을 얻은 것은 아버지 제갈량의 후광 때문이었기에 고질적인 교만함을 고치지 못했다. 제갈량이 사방에 귀를 열어놓고(傾聽) 사람을 상대했다면 제갈첨은 사방에 입을 열어놓았을 뿐이었다.

첨은 아버지 제갈량이 내린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거울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까맣게 잊고 날마다 달마다 호의호식으로 전혀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았다. 제갈량은 군자(君子)였으나 첨은 소인(小人)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거울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제갈첨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불운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마음이 고요해야 멀리 내다볼 수 있다. 마음이 흔들리고 사적인 인연과 공적 관계를 구분 못하는 이가 공직자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난센스이자 국가의 불운이다.

피리양추(皮裏陽秋)라는 말이 있다. 피리는 피부(皮膚)의 안을 뜻하고 양추는 공자가 지은 춘추의 뜻이다. 양은 휘(). 가죽의 속에는 춘추(春秋), 즉 역사가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비록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마음속에는 속셈과 분별력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저마다 생각이 있다. 새해의 시작에 복되고 상서로운 일만 집안은 물론 나라에 가득하기를 바랄 것이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부디 거짓 없고 진실을 말하고 행하는 것을 고대함이 분명하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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