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우리들삶도 돌아보며가꿉시다.

 

이번 설에는 몇몇 친지들에게 모래네 시장에서 대파를 사서 나눠 드렸습니다. 대파는 비닐봉지에 넣은 채로 가끔 물을 뿌려주면 오래 싱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움파라고, 속이 꽉 차고 단맛이 납니다. 대파는 아무 때 아무 곳에 묻어도 잘 삽니다. 다진 생강과 마늘은 얼려 보관하고, 청양 고추는 늘 준비해 놓습니다. 무국에 생강을 넣으면 향기가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 치아가 부실한 탓도 있겠지만, 김치찌개와 배추나물 무나물, 계란탕만한 반찬이 별로 없습니다. 설에도 집사람에게 딱 파전과 김치전만 부탁을 했습니다. 금년에 우리 집의 김치는 다문화 가정과 같습니다. 몇 집의 김치가 모여서 용도에 따라 골라야 합니다.

 

해마다 대파를 넉넉하게 심으려 하고 있습니다. 대파 모종을 사다가 대여섯 단씩은 심습니다. 대파 농사는 제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고랑을 파고 모종을 일렬로 빡빡하게 심으니 제대로 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동네 장로님은 농사를 잘 지으십니다. 김제 백산에서 과수원도 관리하셨고, 지금도 각종 채소를 꽤 많이 가꾸고 계십니다. 그 분이 비닐하우스에 대파 심으시는 것을 봤습니다. 모종을 딱 두 포기 씩만, 듬성듬성 심으셨습니다. 그 듬성듬성 심은 것이, 햇볕을 잘 받도록 하는 것이, 비결이었습니다. 기름진 땅에, 잡초를 잘 뽑아주고 제 때에 물도 자주 준다면, 이 세상에 어떤 농작물인들 잘 자라지 않겠습니까.

 

봄이 오고 있습니다. 시골이라 봄이 오면 꽃들이 요란합니다. ‘도원결의’, 나관중의 삼국지가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일생의 어느 시기에 무엇인가 꿈을 꾸어야 하고, 꼭 그렇게 살겠다고 굳게 다짐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꿈을 꾸고,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소설 삼국지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아름다운 부분이 그래서 도원결의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밭으로 따지자면 몇 두렁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땅에 따라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농사에 따라서 땅을 고르기도 합니다. 우리들 에게는 각각의 삶이 주어졌습니다. 땅이 주어졌고, 농사는 우리들 각자의 몫이라는 얘깁니다.

 

사람들이 살아온 얘기를 들으면 눈물이 날 때가 많습니다. 포항 출신이신 가산 이지관(1932 – 2012) 스님은 근대 한국을 대표하는 학승이십니다. 가산은 가산불교대사림이라는 15만여의 불교 술어를 집대성한 불교종합대백과사전을 남기셨을 뿐만 아니라, ‘교감역주역대고승비문도 저술하셨습니다. ‘역대고승비문은 신라시대부터 근세까지 고승들의 비문을 번역했습니다. 신라시대의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쓴 것이 많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일종의 고승들의 전기들인데, 치열했던 그 분들의 삶이 담겼습니다. 고승들은, 더러는 왕족도 있지만, 거의 척박한 환경에서 성취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눈물겨운 바가 많은 삶들을 사셨습니다.

 

반 베토벤(van Beethoven)’은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성씨로, ‘무농장 출신의라는 뜻입니다. ‘베텐호벤은 림부르크와 뤼티히 사이의 플랑드르지방이랍니다. 악성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아버지의 이름은 요한(Johann van Beethoven 1740-1792)이고, 할아버지의 이름(Ludwig van Beethoven 1712-1773)은 손자와 같습니다. 어머니(Maria Magdalena 1746-1787), 재혼으로, 7남매를 낳았는데 아들 셋만 살았답니다. 악성의 나이로 보면, 세 살 때 할아버지가, 17살 때 어머니가, 22살 때 아버지가 차례로 돌아 가셨습니다. 악성 베토벤은 22살 때 두 남동생을 거느린 한 가정의 가장이 됐던 것입니다.

 

악성은 32살 되던 1802년 가을에 휴양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습니다. 26살 즈음부터 귀에 이상이 생겼는데, 청각이 절망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악성은 결국 귀머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57세까지 살았습니다. 베토벤의 진정한 음악세계는 1803년에 작곡한 3번 교향곡부터 라고 합니다. 작곡 연표를 찾아보니, 바이올린 소나타 (스프링)’1800년부터 1801년 사이에 작곡되었습니다. 귓병이 악화되어 유서를 쓰기 바로 직전입니다. 스프링 소나타의 2악장은 느리고 아름답습니다. ‘아다지오 몰토 에스프레시보입니다. 악성 베토벤이 그 즈음에 처했던 그 참담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어찌 그 악장을 눈물이 없이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다시 읽어 봤습니다. 내용은 별 것이 아녔습니다. “그동안 내가 남 모르게 귀가 안 들려서 짜증이 많았고, 사람들을 피해 왔다. 미안하다. 나도 외롭고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현악기 세트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등을 준) 리히노프스키 후작에게 감사한다. 악기들은 필요하면 팔아도 좋다. 얼마 될는지 모르지만, 두 동생 칼과 XX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얘기 같은 것들뿐입니다. 베토벤이 생을 마감했으면 어떻게 될 뻔 했습니까. 베토벤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폰 브로이닝 부인의 자녀와 사위 베겔러는 평생 친구였습니다. 그런 덕택으로 인류는 영롱한 음악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가끔 뒤돌아봅시다. 한 평떼기 밭이라도 무엇을 심을 것인가 생각을 합니다. 금년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무슨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살아갈지, 농부가 땅을 가꾸는 것이나 같지 않습니까? 마음을 넓게 가지셔야 합니다. 깜빡이를 넣지 않는 차들이 많습니다. 남을 개의치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만 가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누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도 들립니다. “국민들이 모두 화합하여 나를 밀어주면 내가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다.” 어느 외계인의 얘깁니까? 남들을 배려하는 겸손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자질입니다. 내가 뒷사람에게 그늘이나 드리우지 않는지, 우리들의 삶도 돌아 보며 가꿔 나갑시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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