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때였을 텐데, 더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음악이나 미술, 또는 운동을 가르쳤습니다. 물론 대부분 자녀를 예능분야로 나가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교양으로서, 자녀들이 더욱 품위 있고 우아하게 삶을 누리도록 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염원이 담긴 배려였습니다. 웬만큼 사는 집의 딸들은 혼수로 피아노와 재봉틀이 반드시 들어갔습니다. 언제 어떻게 되어 거의 모든 골목마다 울리던 피아노 소리가 끊기게 됐는지 자못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짚불을 때다가, 겨우 연탄으로 바꿨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즈음 석유곤로도 혼수 물품이었지만, 아이엠에프가 터지자, 그것마저도 갖추기 힘든 때가 기억됩니다.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부모님들의 염원을 지녔던 자녀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디오에 열광할 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젊은이들에게 ‘워크 맨’은 선망의 표적이었고, 헤드폰을 끼어보면 부드럽고 선명한 음색이 황홀했습니다. 국산 오디오 가전제품들도 전성기를 이루었고, 제법 고급제품들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골에도 몇 집은 전축이 있어서, ‘우리 집 전축 스피커는 몇 인치다.’라면서 자랑을 했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가히 ‘고전 음악 열광의 시절’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자랐던 세대가 정작 나이가 들더니 ‘그 시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들은 무엇에 열광하며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자녀들에게, 손자손녀들에게, ‘품위 있고 감동적인 삶을 위하여’ 무엇을 보여주고,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우리들 자신을 스스로 살펴봐야겠습니다.
피아노는 악기들 가운데 왕이라고 합니다. 여왕은 물론 바이올린이지요. “바이올린과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고, 피아노와 여자는 새로울수록 좋다.”라는 우스갯말이 있습니다. “오래 된 바이올린 가운데 명기가 있고, 피아노는 기계라서 새로워야 좋다.”라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의 값을 매길 때는 재료값과 인건비를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인건비는 그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서 시간당 임금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보면, 피아노는 엄청나게 비싸야 되는 악기입니다. 피아노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숙련공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요즈음 중고 피아노의 가격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쌉니다. 피아노에 대한 수요가 많았을 때 만들어진 악기들이 폐품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극, 아니 참극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처음 들을 때는 우리들의 마음을, 빈 배처럼, 무심하게 내려놓고 들어야 합니다. 음악이 흐르면 흐르는 그대로 두고, 우리들의 마음이 호수에 떠 있는 빈 배처럼 흔들리게 놔둬야 된다는 얘깁니다. 사공이 배를 어디로 몰지 모릅니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보면, 그것을 ‘빙허(憑虛)’라고 했습니다. 주제를 어떻게 변주를 할지, 그 곡의 작곡자와 연주자에게 몸과 마음을 잠시 맡기고, 그 흐름을 즐기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는 곡이면 기억을 더듬고, 또 어떻게 다르게 연주를 하는지, 나름대로 템포를 따라가 보는 것도 즐거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티브이나 오디오 소리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저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진공관으로 된 튜너와 역시 진공관으로 된 앰프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어찌나 소리가 야들야들하고 좋은지, 들을 때마다 ‘혼자 듣기 아깝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악을 누구의 연주로 듣느냐는 ‘완전 자유’입니다. ‘어느 곡이 제일 좋으냐.’라는 질문도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식성이 있고 입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작곡자와 연주자 그리고 청중’의 관계는, 어쩌면 ‘식재료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의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식재료를 일급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최고의 미식가가 맛을 본다면, 진정한 의미의, 최고의 감탄사가 나오겠지요.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은 식재료나 요리사의 영향을 덜 받을 것 입니다. 어떻든, 우리는 ‘무엇이 최고로 좋다.’라는 말은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면, 음식에서 가장 ‘중요하다.’면 ‘소금’일 것이고, 음악에서는 ‘리듬’이라고 말해야 됩니다. 피아노 음악도 그렇습니다. ‘누구 작곡한 어떤 곡을 누가 연주한 음반이 가장 좋다.’ 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 방법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곡들과 연주 방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조금씩이라도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섯 사람쯤 모이면 그 가운데에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싶습니다. 웬만한 장소에는 피아노가 있으면 어떨까요. 소위 레스토랑이라고 한다면, 그랜드 피아노는 한 대쯤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손님 가운데 누가 쇼팽의 ‘즉흥환상곡’이라도 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빛이 나겠습니까. ‘누구네 집이 얼마나 좋고 무슨 차가 있다.’ 라는 말이 얘기 거리가 되어서 쓰겠습니까. 누구 집에 갔더니, ‘스타인웨이가 있다.’거나, ‘뵈젠도르퍼가 있더라.’ 라고 말하는 정도 돼야합니다. 언젠가 미국의 ‘곤돌라스 라이자’ 국무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를 쳤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남의 나라지만 대단히 부러웠습니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 정부에도 그런 분, 그렇게 피아노 치실 줄 아시는 분, 혹시 누구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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