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까지 에어컨 없이 못 살 것 같더니, 아침저녁으로는, 벌써 춥습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많이 납니다. 곡식이 여물어 가고, 과일의 당도가 바짝 올라갈 때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 안부도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처서가 지났으니 가을 채소를 심어야 합니다. 시장에 나가면 쪽파 씨를 팝니다. 지금 쪽파를 심으면, 가을에 김장 양념으로도 쓰고, 내년 봄에 나물을 하면 맛이 달콤하고 좋습니다. 배추는 미리 포트에 모종을 길렀다가 밭에 옮겨 심습니다. 무는 씨앗을 뿌립니다. 뿌리가 곧아서, 아주 어린 싹일 때를 빼고는, 옮겨심기가 어렵습니다. 김장을 하려면, 배추 값에 비하여, 양념값이 월등하게 비쌉니다. 텃밭에 무는 심어도, 배추는 삽니다. 무는 커도 먹고 작아도 먹지만, 배추는 농사가 잘못 되면, 양념값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시골에 사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른 봄은 잠간 좋지만, 풀이 돋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습니다. “우는 애기는 저리 가라.”입니다. 풀을 뽑고, 나무 가지도 다듬어 주고,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슬슬 재미가 붙기 마련입니다. 시골은 새벽이 좋습니다. 소록소록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것 보다 더 편안하고 아름답습니다. 채소는 아침에 거둬야 더 맛이 있습니다. 상추를 오후 늦게 뜯으면 맛이 씁니다. 옛날 상머슴은 아침밥을 먹기 전에 풀을 두어짐씩 했다고 합니다. 일찍 일어나 밖의 일을 몇 가지 마치고 아침 밥상에 앉으면 밥맛이 그만입니다. 텃밭에 풀이라도 뽑고 나면, 밥 먹을 자격이 생긴 것 같아서, 스스로 흐뭇해집니다. 시골에서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는 못 삽니다. 우리들 삶 자체가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들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나의 삶을 살고 있지 않고, 내가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나 않는지 돌이켜 봐야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이승에서 한 번, 단 한 번 주어진 것 뿐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의 그 소중한 삶이 어떻게 하루하루 채워지고 있는지, 지워지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해야 할 것인가, 어떤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우리들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여러 혜택이 우리들 자신들의 분수에 맞는 것인지, 과분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들이 합당한 노력 없이 어떻게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 부드러운 옷을 입기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기준을 정 합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자신에 맞는 기준을 다시 만듭시다. 남의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넓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명품 브랜드가 그렇게 부럽습니까. 몇 십 년을 노예같이 일하면서, 아파트 평 수 늘리는데, 일생을 보내시겠습니까. 자녀들 교육부터 공부에 너무 억매이지 않게 해야 합시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놀도록 해야 합니다. 평생 품위 있게 교양을 갖추도록 도와 줘야겠습니다. 장래 무슨 직업을 갖게 되든지, 예술과 문학을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학교와 학원에 지나치게 의존할 일도 아닙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면 어떻겠습니까. 15세를 전후로 2년이나 3년간을 자유롭게 지내도록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기간에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시키십시오.
전원으로 오십시오. 적당한 곳에 터를 잡아서 초가삼간이라도 직접 지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궁벽한 곳 일수록 더 좋습니다. 목조로 전원주택을 지으려면 건축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단정하게 초가삼간을 짓고, 대신 창고를 넓게 지으십시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밀가루 한 포대로 한 달을 살더라도 마음 편안하게 살아 보십시오. 집 안 밖 일을 하다보면 이웃 집 일을 도와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심하시면 동서고금 이야기책을 읽으십시오. 무협지도 좋고, 산골 포수들의 얘기도 재미가 있습니다. 라디오는 있어야 합니다. 클래식 음악이 거의 온종일 나옵니다. 웬만한 음식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라면밖에 끓일 줄 몰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얻어만 먹는 참으로 천박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축복은 우리가 마음껏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늘과 땅 사이의 자연 현상들을 파악하고 고금의 역사를 꿰뚫어서 나름대로의 자신의 소견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일입니까. 우리가 정말로 부러워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들 아니겠습니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옷차림이 남루하다고 부끄러워하신 적 있으십니까. 집이 초라하다고 행여 창피스럽게 여기시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안타깝게 여길 것은 사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트인 마음과 현상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느끼는 안목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무슨 일이 됐든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두 측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품위 있게, 살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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