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청명해서 좋습니다. 저는 그런 좋은 가을 날씨를 ‘잠자리 날개와 같다.’라고 합니다. 맑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꼭 잠자리 날개와 같기 때문입니다. 상추꽃대 끝에 앉은 잠자리가 날개를 움직이면 햇빛에 반짝거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을에는 곳곳에 빛나는 것들이 눈에 띕니다. 평범하게 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 새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노상 비슷한 일상을 살면서도 어느 날에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나무라면, ‘어떤 무늬의 연륜’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똑 같은 일들이 반복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약간씩 다른 것이 느껴질 때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주제를 전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보면 비슷한 형태가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깊은 묘미는 그 언저리에서 느껴지곤 합니다.
산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산소가 각각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에 있었습니다. 추석이면 돌아가신 작은 아버님께서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산소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산소는 두 곳 모두 풀이 무성한 비탈길을 헤치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매양 벌초는 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님께서, 차편도 불편한데, 언제 미리 가셔서 벌초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작은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느 산자락에, 조그만 땅을 마련했습니다. 그 땅에 제일 먼저 숙부님이 묻히셨고, 그 뒤 조부모님도 옮겨서 함께 모셨습니다. 십 몇 년 전쯤인가,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동안, 묘소가 쑥대밭이 된 적이 있습니다. 묘소는 이 년만 묵혀도 금방 쑥대밭이 됩니다. 어느 해, 이른 봄부터, 몇 날 며칠을, 저 혼자 산소를 가꿨습니다. 완전히 겉을 걷어내고 잔디를 심었습니다. 산소는 일 년에 대여섯 번은 가야 잔디 관리가 됩니다.
삶에는 어떤 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각자가 속한 틀 속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가족이라는 틀이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는 나름대로의 틀이 또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관습이나 습관도 틀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말마다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일종의, 반복되는, 틀의 일종입니다.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종족을 보존하고 한 삶을 마치는 것도 틀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큰 차이 날 것도 없는, 붕어빵 찍어내는 듯 하는 모습입니다. 하루 세끼씩 먹는 밥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호의호식한다고 별 것이 있겠습니까. 곰발바닥이나 돼지족발이나 거기서 거기일 것입니다. 맛은, 같은 밥일지라도, 입맛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가 틀 속에 갇혀 있어도, 입맛이 살아있고, 스스로 숙성된 맛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맛도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커피 한잔에 한 끼 밥값이 아깝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커피 맛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커피 맛을 아는 사람이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합니다. 짐작은 갑니다. 술꾼이 맛있는 술을 만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집에서 담근 ‘호랑이 눈깔’같다는 술이 있습니다. 술독에 박아놓은 용수에 고인 맑은 술을 뜨면 그 빛깔이, ‘호랑이 눈깔’ 같이, 노릇노릇 합니다. 그 향기가 기가 막힙니다. 한 끼 밥값이 문제입니까, 한 달 밥값도 아깝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 술을 마실 수가 있는 사람은 행운아들입니다. 머지않아 신선이 될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호랑이 눈깔’같은 술을 마신 사람은, 눈동자가 ‘호랑이 눈깔’처럼 맑고 노릇노릇 해집니다. ‘호랑이 눈깔’ 같다는 술은 몇 대 적선을 해야 마실 수 있는 술입니다. 어디 커피를 그 맛에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봄에 군산여자고등학교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옛날 졸업생들이 60세 환갑을 맞았다고 갖은 모임에 초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웬만큼 나이가 든 제자들인지라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됩니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해야 되지만, 아내도 남편을 이해하고 아껴야 합니다. 남편이 술을 좋아하면, 술을 먹지 말라고만 하지 말고, 맛있는 술을 담가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뭐, 중언부언, 했습니다. 말이 길었나, 내용이 영 시원찮았나, 반응이 그저 그랬습니다. 사실 저는 억울했습니다. 환갑을 맞은 제자들이기 때문에 연륜으로 보나, 사회적인 경륜으로 보나 그 정도는 먹혀들어 갈 줄 알았습니다. “꼭 맞는 말씀이시다. 남편이 술을 좋아하니까, 그 ‘호랑이 눈깔’ 술이라는 거 담가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우레 같은 박수가 나올 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몫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몫은 원자재입니다. 몫이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재의 모양과 질에 따라 목적과 용도를 미리 정하고 집을 짓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흙으로라도 집을 지어야 합니다. 주어진 범위에서 머리를 짜내야 할 것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이라도, 순간이라도, 어떤 깨달음이 얻어야 되겠습니다. 어쩌다 쑥대밭이 된 저의 집 묘지를 몇 날 며칠이고 가꾸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한 탓이다. 이것은 네가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수 없이 그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주어진 틀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요, 운명 같은 것입니다. 주어진 틀이지만 그 속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누구처럼, 야자껍데기라도 먹으며 단련하고, 가을날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서라도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켜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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