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바위고개

  꽃이 봄을 알립니다. 발밑에 노란 민들레부터, 먼 산에 흰 색 보푸라기를 뿌린 것 같은 산 벚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꽃이고 향기입니다. 그 것들이, 일종의 기억일 텐데, 잊지 않고 제 때에 제 모습으로, 향기도 그대로, 꽃이 핀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연에 의지해서 삽니다. 산과 강과 바다가 만들어준 터전에서, 각자 주어진 형편에 따라서, 자리를 잡습니다. 척박한 비탈에서도 나무가 자라고, 새는 그 나뭇가지에 깃들어서 둥지를 틉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라고 거기에서 별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령인걸이라고 합니다. 땅이 사람을 낳고, 하늘의 별자리는 모두 생명체와 조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서로가 기대어 산다는 것, 봄이 되어 만물이 생동하는 것을 보면, 그런 사실들이 느껴집니다.

 

봄은 희생의 뜻이 있습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무서운 악마로부터 저주를 받았다가 마법이 풀리는 것, 꽁꽁 얼어붙었다가 대지의 따스한 입김에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 꽃이 지고 또 열매 맺는 것, 모두가 희생과 재생의 반복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염원이 있었습니다. 6.25전쟁 때 찍었다는 사진 한 장이 가슴을 칩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19501218, 대구에서 급하게 군인들을 징집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주는 장면입니다. 하염없이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망연자실한 시선과,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듯 안타까워하는 아들의 표정이, 지난 시절의 아픔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이흥렬(함남 원산 1909-1980)이 작곡한 바위고개라는 한국가곡은 오랫동안 작사자가 미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작사 작곡이 이흥렬로 나왔습니다. 어느 글을 읽다가 작사자가 좌익이어서 밝힐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래 가사 가운데,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가 그런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작사자가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혹시 연세대학교에 계셨던 유종호 교수님은 아실까, 언제 기회가 되면 여쭈어 봐야지 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 궁금증이 얼마 전 풀렸습니다. 작사자는 극작가 겸 연출가였던 이영수(아호 서향 함남 원산 1915-1959?)라는 분이였습니다. 그의 부인 되는 백란영(1917-2015)이라는 분이 그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인제 백병원의 백인제(평북 정주 1898-1950납북)의 큰 따님으로 태어난 백란영선생의 일생은 파란만장 합니다. 재야 사학자이신 이이화 선생님이 바위고개언덕을 홀로 넘자니라는 책을 썼을 정도입니다. 백란영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결혼생활은 5년 간 뿐이었다고 합니다. 남편 이영수가 1958,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자진 월북했기 때문입니다. 2년 뒤, 6.25전쟁이 터졌고, 아들이 보고 싶어서였던지, 남편이 집에 다녀갔답니다. 그 일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백선생님은, 간첩을 만났다는 죄목으로, 몇 년간 징역을 살았답니다. ‘바위고개는 시인이 중학교 2학년 때 썼답니다. 작곡가 이흥렬은 6년 선배로, 시인의 선생이자 친구였다고 합니다. ‘이흥렬가곡집(1934)’에는 바위고개의 작사자가 曙鄕(서향)’이라고 제대로 실려 있답니다.

 

어릴 때 할머님의 손을 잡고 바위고개를 넘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산면 이전리로 시집가신 고모님 집에 갈 때였습니다. ‘이전리는 버스로 고산까지 가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 길을 가다가 몇 번인가를 쉬었다갔는데, 진달래꽃도 피고, 지금도 아하, 거기가 바위고개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님께서는 가슴속에 묻어둔 한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6.25전쟁 때 행방불명(?)이 되시고, 어머님께서는 네 아버지와 헤어졌을 때, 네가 뱃속에 3개월 되어서, 애기가 들어섰다고 얘기를 못 했다. 요새 여자들 같았으면 알았을 텐데, 나는 몰랐었다. 그 때 그런 얘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는데, 노상 그것이 아쉽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잃은 할머니의 가슴속에 묻어둔 한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백란영선생은 생전에 쓰신 글에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한 마리 작은 새라도 제 둥지에 돌려보낼 수 있다면 결코 헛되이 산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를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젊어서 경기여고를 나와서 이화여전 영문학과를 나온 재원이셨습니다.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이 선생의 마음을 사로잡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우리 가곡 바위고개녹음은, 수더분한 음성의 김성길교수, 낭낭하고 매끈한 박인수 교수의 것이 좋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메조소프라노 이정희 교수님의 노래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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