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까이 왔습니다. 벌써 그러는가 싶어서 근교 화원에 갔습니다. 온실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서 눈부신 빛깔과 요염한 자태로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꽃이 눈부시고 요염하다고 향기까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녔습니다. 꽃은 비록 좁쌀처럼 작고, 색깔도 대개 흰색이지만, 향기만은 기막히게 좋은 꽃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놓는 화분은 멀리서 볼 때 울긋불긋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이 꽃을 피워대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 꽃들은 대개 향기가 별로입니다. 양귀비꽃이 야들야들 눈부시게 이뻐도 향기는 생각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화원에서 서향 두 그루와 계화 한 그루를 샀습니다. 서향은 붉은색과 흰색이 있는데, 흰색은 구하기 힘듭니다. 붉은색과 비교하여 향기가 월등하게 좋고,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키우기도 어렵습니다. 계화는 일 년 내내 꽃이 피고 향기를 뿜는 신기한 나무입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가 쇠약해지기도 하지만, 오감이 차례대로 둔해지는 듯합니다. 그때가 어느 날이었던가, 해가 질 무렵, 수첩에 적은 전화번호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그것이 노안이 온 것인 줄을 알게 됐습니다. 우연히 다른 사람의 돋보기를 써봤을 때 얼마나 활자가 선명하게 보이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청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에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숙부께서도 나이가 들기 전부터 청력이 떨어지신 점을 생각하면 ‘가족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고음이 잘 들리지 않게 되고, 여자들은 저음이 잘 들리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 같습니다. 바이올린협주곡을 들으면 독주 악기 바이올린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갈비도 치아가 좋을 때 많이 먹어라.’라는 말이 있었는데, 음악도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커피값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10년도 훨씬 넘은 오래전에 완주 소양 어디 어느 전원 카페에 들렸다가 커피 한 잔에 6천 원이라기에 그냥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집이 수두룩 많습니다. 원두를 직접 갈아서 내려주는 고급 자판기 커피는 오래전에 남원 인월을 지나다가 마셔봤습니다. 요즘 동전을 넣는 커피자판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누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게 되면, 습관적으로 거의 항상, ‘이 커피 맛이 좋은 겁니까?’라고 묻습니다. 스스로 맛도 냄새도 분별할 자신이 없어서 제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정해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얼마 전 몇 사람과 함께 소위 ‘와인 빠’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맛과 향’만 가지고 포도주가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독자적으로 ‘맛과 향’을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이 슬픕니다. 오감이 퇴화는 됐다지만 ‘아주 좋다.’라는 커피를 맛보고 싶기는 합니다.
이번 봄이면 제가 전주 근교 시골에 산지 만 32년이 됩니다. 그동안 동네의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고, 그 자제 여러분들이 옛집으로 내려와 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동네에 낯선 분이 눈에 띄면 대개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 내려온 자제분일 때가 많습니다. 20대에 진즉 동네를 떠나신 분이 이 동네에서 벌써 30년도 넘게 살아 온 저를 ‘타관 사람’처럼 여기는 듯합니다. 사실 부모님이 고향에 살고 계시면, 몸은 비록 타지에 있지만, 내내 이곳에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겨우 10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저의 고향은 익산 춘포’이고, 30년을 더 넘게 살고 있지만, ‘이곳은 타관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저의 고향을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는 한, 저는 이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일 뿐입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기능이 퇴화하겠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만은 왠지 더욱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간혹 있습니다.
오래전 고향에 대한 기억에는 어떤 ‘낡은 오감’이 가까스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마당에 널어둔 보릿대를 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걸어가서, 마루에서 다듬이질하던 어머님과 할머님이 깜짝 놀라며, ‘언제 학교에서 소리도 없이 왔네!’ 하며 반기시던 순간이 엊그제처럼 환합니다. 그렇게도 맡기가 싫던 퀘퀘한 메주 냄새가 언제부터 그리워졌는지, 아마도 그런 것이 모두 다 노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약꽃 향기를 맡으면 화장대에서 ‘동동구루무’를 바르시던 어머님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쩌면 꼭 그 냄새인지, 가슴이 먹먹하곤 합니다. ‘계화’를 5년쯤 충분히 숙성된 배양토를 넣고 큰 화분에 옮겨서 거실의 양지쪽에 놓았습니다. 며칠 뒤부터 모든 가지에서 윤기가 나는 새잎이 돋고, 이내 꽃이 피고, 낡은 잎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체에게 노화현상이란 그와 같이 꼭 필요한 현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카톡으로 ‘유엔 총회에서 한국어가 7번째 공용어로 만장일치 채택되었다.’라는 내용이 떴습니다. 사실이라면 그런 ‘낭보’가 없겠는데, ‘믿어야 할지, 믿어도 될지’ 불안하게 느꼈습니다. 먼저 몇 군데 외국 언론, ‘뉴욕타임즈’등에서 검색해봤습니다. 그런 얘기가 전혀 없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에 직접 ‘가짜 뉴스’라고 올리기도 뭣하고, 그대로 두고 말았습니다. 내용만 보면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헷갈리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통령 후보끼리 TV 토론을 두고 어떻게 할 것인지 별말이 많습니다. ‘범인 심문하려는데, 증거자료 없이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합니다. 축제가 되어야 할 대통령 선거가 곳곳에서 별별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 듯합니다. 민주주의도 노화현상이 있는 것인가, 그것이 노화되어 민주주의의 오감이 퇴화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오감은, 이 순간, 어떤 냄새나 향기를 맡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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