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신록이 푸르렀습니다. 초록빛으로 물든 산허리에 자줏빛 오동꽃이 눈이 부시도록 선명합니다. 그 자주색 오동꽃빛깔이, 옛 생각이 나게 하고, 왠지 섧고 눈물이 나오게 만듭니다. 차창에 그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 순간적으로 아쉽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오동꽃을 보면 한참씩 발을 멈추고 바라보곤 해집니다. 무슨 마법에 걸린 듯, 멍하니 우러러 보게 만듭니다. 공주에서 학교 다닐 때, 금강변의 산성공원에 핀 오동꽃과 함께 박용래 시인의 글이 떠오릅니다.
“오동꽃 우러르면 함부로 노한 일 뉘우쳐진다./잊었던 무덤 생각난다.//검정치마, 흰 저고리, 옆가르마, 젊어 죽은 홍래 누이/생각도 난다.// 오동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 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원뢰.”<박용래(1925-1980) ‘담장’ 전문. 현대시학 1970.4>
또한, 정이 많고 개결했다는 시인이 ‘함부로 노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언뜻 궁금해집니다.
꽃이 필 때가 있고, 잎이 무성할 때가 있습니다. 꽃이 지듯 잎도 지고, 눈보라 속에서 헐벗은 앙상한 가지로 서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핀 꽃은 보기는 좋지만 가엽기도 합니다. 그것은 끝없이 순환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라고 보기에는 억울하고 측은한 일입니다. 좀 더 따뜻할 때, 장미꽃처럼, 잎들이 돋은 후, 그 잎들에 싸여서, 호사스럽게 꽃을 피울 수는 없었던 것인지, 안쓰럽고 불상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헌책방에서 문익환목사님의 옥중서신을 묶은 책을 구했습니다. 책 제목이 ‘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입니다. 책의 첫머리에 손녀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습니다. 전주교도소에서 안동교도소로 이감된 직후의 글입니다. “…전주교도소 물도 좋지만 여기 수돗물은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할 정도란다…”라고 쓰셨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엄동설한에 핀 한 떨기 매화꽃 같은 분이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 동안이나 머물다가 갑니까. 100년도 못 되는 그 짧은 기간에 같은 하늘아래 살다간다는 것은 엄청난 인연 아닙니까. 저 멀리 서로 반대 방향에서 날아온 두 화살이 공중에서 딱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과 같이 기막힌 일입니다. 우리들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만큼 우리들 서로서로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갖고 있는 기억은 나와 함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나는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간신히 존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그런 뜻 아닙니까. 우리들 자신이란 결국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의 본질이란 나의 말과 행동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느냐는 것입니다.
돈이고 벼슬이고, 그 무엇이든, 그렇게 아무데서나, 시도 때도 없이, 뻐기고 난리를 칠 일이 아닙니다. 어쩌다 어떤 배역이 주어졌다고 본 바탕이 송두리째 드러날 정도로 난리를 쳐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남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운전하면서 보면, ‘깜박이’를 안 넣는 차들이 많습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안중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든 존재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야 합니다. 버스에 먼저 타서 좌석을 차지했다고 그 버스에 대한 여러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버스에 서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옆 빈 좌석에 물건을 놓지는 않습니까. 자기 손자 귀엽다고, 서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옆 좌석도 차지하고, 손자를 앉히지 않으셨습니까. 사회적 지위나 힘을 믿고, 혹시 그것을 자랑하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자기 기만적인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셔야 합니다.
‘군산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5월1일(화), ‘백건우피아노리사이틀’이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은 가히 ‘마에스트로’, ‘거장’입니다. 젊어서부터 음악에 대한 높은 사명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문화예술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음악을 베풀었습니다. 음악회에 참석하는 청중도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음악만을 생각한다면 음질이 좋은 오디오로 듣는 쪽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우리가 먼 곳까지 찾아가서 음악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종교행사와 비슷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 받는, 하나의 ‘제의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혹시 음악회에 잘나가는 고위직 행정 관료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참석할까 싶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문화예술에 대한 확고한 소명의식이 필요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은 문화예술 쪽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제 눈에,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오월은 행사가 많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아예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했습니다. 나라 안팎으로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중요한 국제적인 이슈와 회담들이 줄을 잇습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핵 폐기’, 즉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입니다. 우리 문재인대통령이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시간은 촉박하고, 넘어야 할 산은 많고 높습니다. 누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위장평화공세’라고도 합니다. 염려가 되는 것이 남북 지도자들이 어렵게 합의를 도출한다고 해도, 남쪽과 북쪽, 각각의 ‘보수골통’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문득, 하인두 화백이 쓴 책제목, “당신 아이와 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때려요.”가 떠오릅니다. 남북이 분단 된 우리나라는 가족구성으로 말하면, ‘결손 된 가정’ 입니다. 노한 일 뉘우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우리들 모두 오동꽃을 우러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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