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입니다. 한낮의 무더위는 여전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삽상합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그 가운데 역시, 봄이 제일 좋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좋게만 느껴지던 봄이 어느 때부턴가 마냥 즐겁지만 한 것이 아닌 계절로 되었습니다. 슬픈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3-15 부정선거, 4-19 학생혁명, 5-16 군사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은 중병을 앓고 난 사람이 갖는 일종의 ‘트라우마’ 아닙니까. 우리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온갖 기억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 지긋지긋하던 계절이 지나가면, 삽상한 바람과 함께, 들려오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패티 김’의 ‘구월의 노래’와 ‘나나무스꾸리’의 ‘트라이투리멤버’였습니다. “왜, 그런 노래가 좋았지?” 싶은데, 일종의 ‘진혼곡’으로 들렸기 때문 같습니다.
저는 전주 근교 시골에서 35년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침 6시를 전후하여 1시간쯤 ‘아중호수(인교저수지)’ 둘레길을 산책합니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다가 보면, 바람길이 있고, 유독 시원한 목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잠깐씩,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두 손을 올리고 바람을 쐬면 “오늘도 최소한 헛보내지는 않는 셈이구나!”라는 흡족한 느낌이 듭니다. 엊그제, 2박 3일 일정으로, 포천-철원-여주 일대를 갔었습니다. 전주에서 원거리라 서울까지 대중교통편을 이용했고, 나머지 여정은 친지의 승용차를 빌렸습니다. 오랜만에 대처로 올라가, 한탄강 래프팅, 철원 공산당 청사-도피안사, 광릉 봉선사와 수목원, 여주 신륵사 등지를 둘러봤습니다. 도피안사의 통일신라 시대 제작된 ‘철조비로자나불’은 국보였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티브이에서 보는 뉴스는 여전했습니다. 다 거짓말에 중독된 듯한 사람들 얘기 아닙니까?
이번 며칠 돌아다니면서 일행과 내내 나눈 얘기 가운데 한덕수 전 총리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분 고향이 어디랍니까?”부터,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고, 망월동 민주열사 묘역 찾았다가 참배하지 못하고, 두 손을 모아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탈했던 시기에 친일했던 사람의 얘기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망할 줄 몰랐다.”였습니다. 윤석열 비상계엄이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윤이 측근들과 폭탄주를 즐겼다니, ‘계엄 얘기’는 술판에서 진즉부터 나왔을 것입니다. 박수동 만화 ‘고인돌’에 ‘흑심’이 있습니다. ‘미쓰고’에 흑심을 품은 사람의 침은 색깔이 까맣더랍니다. 이번 내란에 동조했던 사람의 침 색깔도 혹시 그럴 수 있을까요? 아가사 크리스트의 영화 ‘오리엔트특급’에서도 살인범이 여럿이었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사찰에 가면 법당에 그려진 벽화 가운데 심우도(尋牛圖)가 있습니다. 송나라 시대 곽암廓庵이 선종 불교의 깨달음의 단계를 소를 찾는 과정 10단계로 비유했답니다.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기거했던 가옥 ‘심우장尋牛莊’도 그런 뜻 같았습니다. 어느 사찰 심우도든 민화에 가깝습니다. 어린이들이 유독 만화를 좋아하듯이, 대중은 민화를 보면서 친밀감을 더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발소에 가면, 소위 ‘이발소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림들은, 어느 한 시절, 김소월 시와 함께, 촌스럽다며 낮게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저도 어느 때부턴가, 심우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를 끊었다는 이를 만나면 저 사람은 ‘심우도’의 어느 단계에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치료하다가 잘못하면 다칩니다. 바로 ‘알음앓이’입니다. 어떤 중독이든 끊으려면 금단현상이 나타난다는데, 그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랍니다.
거짓말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내뱉는 말 가운데, 명사 형용사 부사 할 것 없이 모조리 거짓이고, 토씨만 어떤 경우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끼리끼리 ‘비화폰’을 나눠서 가졌다는 것 아닙니까? 비화폰으로 안심하고 나눈 통화 내용은 이틀마다 지워지는 줄 알았고, 삭제도 시켰다지 않습니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윤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후에, 비화폰 끼리 나눈 통신기록이 저장된 서버를 발견했답니다. 다행 아닙니까. 저는 그것을 일종의 국운國運이라 생각합니다. 비화폰이라 믿고, 통화 사실을 부정했던 사람들이 측은하고 불쌍하게 됐습니다. 거짓말이 들통난 다음 작금 상황이 가히 가관입니다. 뉴스를 보면 거짓말에 중독됐던 사람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잘못하면 길들이려던 소의 뿔에 떠받혀 죽는 불상사도 나게 생겼습니다. 쥐도 다급하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시골에서는 김장 채소를 심을 때입니다. 처서 무렵, 8월 23일, 심었는데, 요즘은 기후가 무더워져서 시기가 약간 늦춰졌습니다. 김장배추는, 김장을 아주 많이 하는 집은 빼고, 대개 종묘상에서 모종을 몇 포기씩 사다 심습니다. 배추가 어찌 품종에 따라서는 김치를 담가도 질겨서 식감이 연한 품종은 따로 선택을 잘해야 한답니다. 무는 9월 중순 이후 조금 늦게 파종합니다. 식구도 적은데 무가 너무 크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무김치나 동치미를 담글 때도 무가 적당한 크기여야 좋답니다. 저의 집에서도 꼭 챙겨서 심는 것이 쪽파입니다. 쪽파는 김장 때도 쓰지만, 내년 봄에 날씨가 풀리고, 쪽파가 도톰하게 살이 오르면, 쪽파 나물이 기가 막히게 연하고 맛있습니다. 엊그제 며칠 수도권 대처에 올라갔다 온 후에, 여기 우리 고장이, 그렇게 기후도 좋고 인심도 좋고, 살기 좋은 곳임을 새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