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날씨가 제법 쌀쌀 합니다. 금년은 24절기로 11월 8일이 입동이고 22일이 소설입니다. 절기상으로, 입동에 겨울이 시작되고 소설이면 얼음이 언다고 했습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다보니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자주 낍니다. 새벽녘이면 냇가며 골짜기에 낀 안개가 신선들이 사는 듯 하는 선경을 이룹니다. 저녁안개가 드리우기 시작하는 황혼녘에 낯선 마을을 지나갈 때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멧새처럼 포르르 날아들고 싶다.’라며 향수에 젖는 때도 바로 이 즈음입니다. 그런 풍경은 가히 한 폭의 그림입니다. 달리는 차를 멈추고 한참씩 그 모습을 보고 싶지만 우리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붙잡아두지 못하고 보내버린 지난 세월처럼, 안개가 자주 끼는 요즈음에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왜, 그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둘 걸…’했던 것들 말씀입니다.
전주천변에 서는 새벽시장에 자주 나갑니다. 집에서 필요한 어떤 특별한 것도 없으면서 꼭두새벽부터, 청승맞게, 찾아가는지 저 자신도 의아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명목상으로 건강, ‘새벽운동 삼아서 다닌다.’고는 합니다만, 꼭 그런 것뿐만은 왠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아! 그 것이었구나!’하고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믿거나말거나, 줄여서 말씀 드리자면, ‘역광으로 비친 풍광 때문 같다.’라는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전주천 남부시장 고수부지에서 새벽마다 서는 장을 둘러보는 코스는 대개 비슷합니다. 잠수교를 지나 매곡교 밑 부근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반대방향으로 끝까지 걷다가, 도로로 올라와서, 다시 매곡교를 지나서 주차장까지 돌아오곤 합니다. 그 코스 가운데 ‘떠오르는 햇살을 마주 보면서 역광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좋더라. 그 풍경 때문에 더 자주 새벽시장에 가는 것 같더라.’라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가 되었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납니다. 프로에게는 함부로 마주 상대할 수 없는 쌓인 전문지식들이 많습니다. 그 것들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별 것이 아닌 것 같아도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X선 회절사진으로 DNA의 나선형 구조를 추정했던 것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설프게 몇 가지 지식으로 프로 흉내를 내는 것은 ‘현대판 신성모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같은 비전문가가 ‘사진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자격지심도 들고, 죄송스러워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결국 ‘존중하고 경외하게 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평소 사진을 즐기는 입장에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사진과 사진기에 대한 얘기를 해보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사진의 가치는 기록성에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결혼식 때 그 당시 군산에서 활동하시던 사진작가 채원석 선생님께서, ‘롤라이35’로, 흑백 사진을 몇 장 찍어 주셨습니다. 그 때, ‘바로 그 순간의 기록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사진도 잘 찍으셨지만, 꼬박 36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얼마 전 저의 고모부님께서, ‘누가 찍었는가, 어머님 사진이 딱 한 장 있데.’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진은 제가 고모부님의 어머님을, 저로서는 사돈어른을, 이안 리플렉스 4X4 카메라였던, ‘야시카127’로 찍어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마침 곁에 있던 고모부님 아들이 ‘형 아니면 누가 찍어드렸겠어요, 형이 찍었어요.’라고 말을 거들었습니다. 사진은 잘 찍었든 못 찍었던 옛날 어느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기록했다는 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사진의 역사는 ‘렌즈와 필름과 셔터와 파인더의 발전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스마트 폰에 내장된 카메라는 성능이 대단합니다. 줌렌즈가 몇 개씩 들어 있고, 해상력도 옛날 대형카메라 이상으로 좋습니다. 노출의 많고 적음에 따른 필름의 관용도라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대용량 메모리 때문에 필름 걱정도 사라졌습니다. 아쉬운 점은 화면의 비율입니다. 소위 ‘라이카사이즈’라고 하는 황금비율, 가로세로 약 8:5 쯤 되는 비율이 최고로 좋겠지만, 스마트 폰 화면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스마트 폰 사진을 인화하려면 적당히 화면을 잘라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영 못 마땅하게 느껴집니다. 다행히 폴더블 폰이 나왔으니 황금비율로 된 화면을 가진 스마트 폰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노상 스마트 폰 카메라만 쓰다가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사진전용 카메라를 썼더니 상상 이상으로 사진이 부드럽게 더 잘 나왔습니다.
사진은 역광으로 찍어야 제 맛이 납니다. 새벽시장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 있는 모습을 역광으로 바라보면 셔터를 수 없이 누르고 싶어집니다. 매곡교 위에서 막 솟아오르는 햇살을 받고 역광으로 비치는 새벽시장의 모습은 어떤 마력이 있습니다. 사진은 사람이 들어 있어야 좋습니다. 주위에 나이가 드신 분들이 옛날 사진들을 정리 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몇 장만 빼고 모두 소각해 버리셨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 때마다 이해가 조금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에게는 소중하지만 남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얼마 전 ‘마리아 칼라스 기록 필름’을 봤습니다. 훗날 ‘누가 나를 그리워해준다.’라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 것인가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우리를 그리워해줄 사람이 우리들 가족들 말고 도 얼마나 있겠습니까. 집집마다 가족사진은 꼭 잘 찍어둘 일 아니겠습니까?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