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풀이 눕습니다,

가을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하늘이 고려청자 빛깔처럼 맑고 맑다가도 어느 순간 마파람이 불어오고 검은 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소나기가 퍼 붇습니다. 그럴 때 들에서 풀 베거나 소 풀 뜯기는 초동이 소나기를 맞고 허겁지겁 귀가하는 풍경은 옛 얘기가 됐습니다. 이제 고향에서 ‘검은 구름, 늦은 소나기’를 흠씬 맞던 그런 육감적인 기억은 어렴풋하게나마 시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용래(1925-1980) 시인의 ‘소나기’에는 그 풍광을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았고, 시인 자신도 먼 기억을 소환했었던 탓인가, 짧게 변죽만 울려서 감흥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누웠는 사람보다 앉았는 사람 앉았는 사람보다 섰는 사람 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보다 송아지 두, 세 마리 앞세우고 소나기에 쫓기는 사람>> (‘소나기’ 창비 1984)

가을비가 자주 내리지만, 텃밭에 쪽파 두어 두렁을 심어놨다고, 저는 그리 싫지 않습니다.

 

시인은 시를, 신문기자들이 육하원칙六何原則으로 기사를 쓰듯, 논리적으로 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유홍준(1949- )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얼마 전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라는 자칭 ‘잡문집’을 냈습니다. 그 책에 1974년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김지하(1941-2022) 시인 등등이 함께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되었을 때의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25세의 유홍준이 교도소에서 틈틈이 써둔 습작시를 33세였던 김지하에게 교도관 몰래 창틈으로 던져줬답니다. (교도소에서는 그런 것을 ‘비둘기’라고 한답니다) 이튿날 김지하가 교도소 휴지 일곱 장에 빽빽한 글씨로 쓴 답신을 보내왔답니다. 그 내용이 잡문집에 실렸습니다. 여섯 가지를 지적했는데, 그 여섯 번째가 “때로는 너무 감상적이고 너무 설명적이다. 발라드가 아닌 한 설명은 시에 있어서 최대의 금물이다.”였답니다. 그 뒤 유홍준은 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산문으로 전향을 했다고 합니다.

 

김수영(서울 1921-1968)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 급서하기 불과 20일 전에 썼다는 시 ‘풀’은 여러 가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별 두 개인 박정희(구미 1917-1979) 육군 소장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뒤 1968년 봄, 집권 연장을 위해, 3선개헌을 했었습니다. 그 살벌한 시대에 나온 시이니, ‘바람이 불고, 풀이 눕는다’라는 구절을 ‘풀을 독재에 억압을 당하는 민중’으로 해석하는 것이 대세를 이뤘습니다. 그 당시는 대학입시에 본고사가 있었던 때였는데, 1972년 김현승(평양 1913-1975) 시인이 쓴 ‘한국현대시해설’에서 주장했던 바가 모범답안처럼 되었답니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풀’ 제2련) 꼭 그렇게 들리지 않으십니까? 근래에 와서는, 자연 친화적인,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평론가들도 꽤 생겼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진 점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라고 치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전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악랄하고 못된 인간들의 탐욕 때문인 것만은 확실할 것입니다. 이제 세상은 ‘바람이 불고, 풀이 눕는다’라는 정도의 어쩌면 목가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쳐다보고 있는데,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학살과 러시아가 벌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략 등등은 어떠한 시어를 동원해도 묘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 등등 물품의 관세를 낮추려면 우리나라 1년 동안의 국가 예산만큼을 선불로 내라고 요구한답니다. 가뜩이나 IMF 위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비바람이 몰아쳐 불면 풀들이 바짝 땅에 엎드릴 뿐만 아니라, 아름드리 큰 나무들 뿌리까지 뽑힐 수가 있습니다. 작금 이재명 정부는 검찰청이 갖고 있던 수사와 기소의 기능을 나누는 등, 정부 조직을 개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야당은 말할 것 없고, 기존 관료의 저항이 어떨지 짐작이 됩니다. 여당이 국회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갖고 있으니, 약간 진통은 있겠지만, 정부와 여당의 뜻대로 정부의 조직이 개편될 것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권교체는 야당이 된 국민의 힘 입장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을 보거나, 정권이 바뀐 뒤에 국민의 힘 당 대표를 뽑는 선거를 보면, 국민의 힘이 처한 상황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정당이 종교단체와 연루되었다면 정당해산까지 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국민의 힘 중진의원들의 현명한 역할이 기대 됩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 마디로 ‘힘의 논리에 따른 약육강식의 시대’입니다. 점점 심해지는 빈부의 차이와 교육의 차이가 빚는 사회적 갈등에는 계층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벽과 계층 사이의 괴리로 인한 극단적 반목이 폭력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빈부-지위에 관계가 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풍토가 절실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면, 많은 사람이 “항산恒産은 없어도 항심恒心을 갖을 수” 있습니다. 김수영의 시 ‘풀’을 어떻게 자연 친화적인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바람과 풀을 가해자-피해자로 보지 않고, 서로 다정하게 놀고 있는 정경으로 본답니다. 나무의 뿌리까지 뽑히게 부는 바람은 풀과 노는 것이 아닙니다. 뜰에 나서니 어디서 오는지 향기가 가득합니다. 바로 계화였습니다. 이제, 가을의 국화와 함께, 금목서 은목서 구골목서가 차례로 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