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무슨 염원을 갖고 사십니까

어린 시절의 고향집을 생각하다보면 빨간 홍초가 기억 됩니다. 마당 귀퉁이에서 한 여름부터 가을까지 불타는 듯 붉은 그 색깔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전주군산 산업도로가 생기기 전에 옛 전군도로를 가다보면 목천포 근처 수로의 제방에 그렇게 홍초가 있었습니다. 가로수처럼 몇 백 미터쯤 홍초를 심었는데, 늦가을이면 월동을 시키기 위해서 구근을 캐서 트럭에 싣는 모습도 봤습니다. 언젠가 계룡산 갑사를 가는 길에 어느 가든 비탈에 무더기로 붉은 홍초가 핀 것을 보고 이듬해 봄에 그 집을 찾으러 갔다가 못 찾고 되돌아 온 적도 있습니다. 그 뒤에 몇 군데에서 홍초를 본 적이 있고 금년 가을에도 차창 밖으로, 그 칸나라고도 불리는, 붉은 꽃을 봤습니다. 엊그제 화원에 들리니, 시들어 가고는 있었지만, 홍초 화분이 있어서, 몇 포기를 사서 마당가에 옮겨 심었습니다. 드디어 오래 된 숙제가 해결된 듯 기분이 썩 좋았습니다.

 

고향집의 붉은 홍초가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 시절 함께 살았던 식구들이 그립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꽃 색깔과 함께 토방이며 마루 안방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 같은 것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마루 기둥에 걸려있었던 수건 한 장이, 그 깔깔한 감촉까지, 허블망원경의 끝에 잡힌 원시은하의 광자 몇 알갱이처럼, 희미하게 잡히곤 합니다. 그 희미한 영상은 사실 원시은하보다도 더 먼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기억들은 지금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염원이란 우리가 간절히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이룰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향집에서 그 기억을 공유하고 지냈던 사람들은, 저만 남고,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들도 나름대로 어떤 소중한 기억들을 갖고 계셨을 텐데, 모두 소멸되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그 분들은 무슨 염원을 가지고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은 이어집니다. 내가 이룰 수 없는 꿈이 있었다면,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줄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내가 이룰 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 아들이나 딸이 이루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언감생심 말을 못해서 그렇지 그런 꿈들이 왜들 없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의 삶을 이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앞 시대를 사셨던 분들은, 참혹한 전쟁을 거치는 등,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던 분들 같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만을 염원하시지 안했나 싶습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 급했던, 절대 절명, 위기의 시대를 지냈을 그 분들의 생애가 눈물겹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어버이입니다. 생명들은 기억들로 면면히 이어져 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염원 아니겠습니까.

 

메밀꽃 필 무렵은 가산 이효석(1907-1942 평창)30살에 쓴 단편소설입니다. 얼굴이 얽은 허생원이 동료 장꾼 조선달과 동이라는 청년의 셋이 달밤에 다음 장이 열리는 곳으로 가는 얘기였습니다. 냇가를 건너가다 허생원이 물속에 빠지니 동이가 등에 업고 갑니다. 소설은 허생원과 동이가 똑같이 왼손잡이라는 것으로 부자관계일 수 있다는 암시를 주면서 끝납니다. 왼손잡이가 유전적인 형질이냐 아니냐는 논란거리가 못 됩니다. 허생원에게 동이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떠오르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염원은 그런 것과 비슷합니다. 설령 내가 100미터를 몇 10초에 못 뛰더라도, 누군가 그렇게 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같은 인류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고 딸이면 더욱 좋겠지만, 누구라도 내 염원을 이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천만 다행스런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풍요롭게 가꾸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바뀌었는데 우리들의 생각과 염원이 옛날 그대로 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목숨을 이어가고 부지하기 급급할 때와 다릅니다. 우리가 근근이 살기위해서 교육을 하는 것입니까. 품위 있게, 격조 높이, 문화를 향유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을 받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런 직장이 어디이고 얼마나 있습니까. 삶은 풍요롭게 하는 것은 폭 넓은 교양과 예술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이 됩니다. 초중고등학교 예체능 교육 강화해야 합니다. 공교육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면 꼭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히 검정고시가 어렵지 않습니다. 대학도 그렇습니다. 좋다는 대학을 가려고 하지 말고, 좋은 학과와 좋은 교수를 알아서 찾아 보셔야 합니다.

 

한반도 정세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보수골통이라는 기득권 정치세력들의 속이 훤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길이 애국이고 매국인지, ‘애국과 매국의 차이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이 땅은 우리들 선조들의 염원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요즘 상사화가 활짝 핀 것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상사화 가운데 꽃 무릇이라는 석산은 유난히 색깔이 붉습니다. 불갑사와 선운사 일대 골짜기를 타고 타오르는 꽃은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 곳에서, 6.25 동란 때, 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학살됐는지 기억하십니까. 그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할머님의 염원은 무엇이었을까. 저의 아들에 대한 저의 염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오늘 날 정치가들이, 또한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무엇인지도 묻고 싶습니다. 결국 시대정신이 무엇이냐는 질문 아닙니까?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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