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에 다녀오다가 동네 어귀 배추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난여름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빗속에 그 사람이 혼자 모종을 옮겼던 밭입니다. 배추는 하루가 다르게 속이 꽉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더니, 아침 일찍 일어나는가 봐?”
“예, 너무 일찍 잠이 깨서, 밖은 깜깜해서 나가도 못하고, 요즈음은 그럽니다.”
이 동네에 제가 어언 30년 가까이 살다보니, 그 동안 돌아가신 동네 분들도 많았고, 새파랗게 젊었던 사람도 이제 내일모레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들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핸드볼 선수였다는 그 사람도, 동네 이장을 몇 번 했고, 아들과 딸은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매년 그 해 농산물시세를 짐작해가면서, 콩이나 대파, 배추 등을 돌아가며 경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시장에서는 고추장아찌를 담기 위해서 청양고추와 잎 순을 샀습니다. 고추장아찌는 청양고추 잎이어야 합니다. 신품종 잎은 너무 물러서 제 맛이 안 납니다. 고추와 잎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따야 합니다. 어차피 익지 않을 풋고추는, 쉽게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출이 많은 품종을 심다보니, 청양고추를 심는 집이 드뭅니다. 풋고추는 따기 쉽지만, 딱딱하게 목질화한 줄기를 피해서, 부드러운 고춧잎을 뜯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농산물의 가격은 투입 된 농자재의 경비와 인건비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 한 가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언제 부터인가 농산물 가격을 깎으려 하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입니다. 식구라고 둘뿐이니 욕심을 부려봤자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제가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가을이면 곶감을 깎았습니다. 상강이 지난 주말에 논산 양촌에 감을 사러 갔었습니다. 양촌은 대둔산 아래 골짜기에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하고 특히 ‘두리시’라는 품종으로 곶감을 깎으면 당도가 아주 높습니다. 금년에는 감꽃이 필 때 서리가 내려서 감이 흉년이라고 했습니다. 가격도 맞지 않고, 작년 곶감이 냉장고에 아직 남아 있다고 해서, 그냥 되돌아 왔습니다. 저의 고향 춘포에서는 가을이 되면 이웃집 할머님 한 분이 완주 동상으로 곶감을 깎으러 다녀오셨습니다. 어릴 때 그 집에 놀러 가면 감 껍데기 말린 것을 주셨습니다. 그 나중에 어른들에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곶감을 깎아주는 삯은 없었고, 밥을 먹여주고, 자기가 깎은 감 껍데기와 곶감 약간을 줬었다고 합니다. 작년 곶감이 냉장고에 남아 있다니, 그리 좋아 할 일이 아닙니다. 주변에 당뇨를 앓고 계신 분들이 그 만큼 많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거의 주말마다 산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산을 찾아가도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양촌에 감을 사러 갔던 날 찾아갔던 대둔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들 일행은 등산을 하기에는 준비가 안 됐고, 케이블카를 타려고 가보니 줄이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전 11시쯤이나 됐을까,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꾸역꾸역 몰려왔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 올라가나, 보나마나, 마천대 꼭대기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헬스클럽에 다닌다던데, 우리에게 어쩌면 산은 하나의 거대한 헬스클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국공립공원 관리공단이 있지만, 국민들 건강을 위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계산기를 두드려도 보겠지만, 의료보험 지출을 줄이는 역할도 대단히 클 것입니다.
산에 오르면서, 역광으로 비치는, 각양각색으로 물 든 나뭇잎들의 빛깔을 보면 황홀한 느낌이 듭니다. 황금빛이 도는 주황색은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 만든 바이올린 명기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 ‘오렌지’라는 말은 인도 남부의 고대 ‘드라비다어’로 ‘향긋하다’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오렌지는 중국에서 4500년 전부터 재배되어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고대 인도에서 그 이름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군산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고 계시는 ‘이영철(1950- )’이라는 분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예고, 원광대학 음악과를 나오고,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가서 저명한 ‘지오바니 모라시(Giovanni B. Morassi 1934-2018)’선생으로부터 바이올린 제작을 배웠답니다. 필요한 자제를 크레모나에서 수입해서 쓰는데, 특히 붉은 빛이 도는 주황색 주 염료는 광물질을 알콜에 녹여서 얻는답니다.
“우리 삶에도 빛깔이 있다면, 나는 지금 무슨 색깔쯤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난 주말, 내장산에 갔을 때입니다. 일주문–내장사–원적암–벽련사–일주문 코스를 걸으면서 그 역 코스를 돌았던 기억도 생각이 났습니다. 원적암을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길이 서로 달라질 뿐입니다. 길을 오르고 내려가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변 경치에 감탄하면서 서서히 오르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내 골몰하게 생각에 잠겨서 산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어언 나이가 들고, 문득 그 나이가 느껴지며 자신에 대해서 깜짝 놀랍니다.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던가, 빛깔로 말하자면, 저 나무들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일까. 어떻게 바이올린은 그런 깊은 비색을 띠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며 점점 가을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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