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세상을 살고 계십니까

봄이 오고 있습니다. 매화 꽃봉오리가 수수알갱이처럼 도도록해졌고, 남쪽 바닷가에는 이미 산동백이 피었습니다. 산동백은 잎이 작고, 꽃 색갈이 주황색으로, 촌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여수에 가면 곳곳에 가로수로 심었습니다. 재래종 홑 동백보다 훨씬 일찍 피고,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산동백은 어쩔 수 없이 꽁꽁 얼어버립니다. 금년 달력을 보니 24일이 입춘입니다. 우리 동네 골목을 오다보면 작년에 붙인 입춘방이 대문에 그대로 붙어있는 집이 있습니다. 담장과 대문을 새로 만들었는데, 작년 입춘 무렵, 주인어른이 기분을 내신 것 같습니다.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 정성을 드려서 쓴 글씨가 어느 달필의 것보다 더 정겹게 보여서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아파트에 사는 누구도 입춘방을 붙인 적이 있었다니, 나이든 남정네들에게 입춘방은 아득한 로망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입춘 무렵이면 그렇게 문간에 입춘방이라도 써 붙이며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모름지기 며느리가 지필묵을 챙기면 손자와 손녀가 입춘방을 쓰시는 할아버지 곁에서 거드는 모습은 어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아니겠습니까. 손자는 더 자라면, 할아버지 대신에 입춘방을 쓰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조실록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없겠지만, 정조가 썼다는 똑 바르고 단정한 글씨체를 보면 그런 할아버지 영조 생각이 납니다. 어린 손자가 쓰는 입춘방을 보고, 할아버지 영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대견하고도 마음이 쓰라렸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말씀 드리는 것 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바뀌고도 또 몇 번을 바뀌었지만,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옛날과 비슷한 점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삶에는 꿈과 편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꿈이 언젠가 소박하게나마 성취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곧 편안함의 원천 아니겠습니까.

어떤 상황이 바뀌면 기존의 원칙들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절대적인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는 얘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금강경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가 바로 그런 얘기입니다. “내가 말하는 법은 뗏목과 같은 것이다(知我說法如筏兪子). 법보다 소중한 것도 마땅히 버리는데(法尙應捨), 법이 아닌 것들이야 어찌하겠느냐(何况非法).” “물에 빠진 사람은 뗏목에 올라 목숨을 건지지만, 언젠가 뗏목이 뭍에 닿으면 뗏목을 벗어나야 한다. 이처럼 법보다 더 소중한 뗏목도 마땅히 버려야하는 것이거늘, 법 아닌 것들이야 어찌하겠느냐. 버려도 괜찮은 것 아니냐.”라는 뜻입니다. 결국 집착을 갖지 말라는 얘기입니다만, 우리 같은 중생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고착화 된 옛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생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개구리가 생각은 올챙이다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전임 국방부 장관 9명이 포함된, 퇴역 장성들이 모임을 결성했다고 합니다. 정회원이 무려 450명을 넘는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헌법의 의무를 저버리고 대한민국 파괴행위로 나아간다면 국민이 갖고 있는 헌법상 모든 권리, 수단, 방법을 동원하겠다.” “주한미군 주둔 경비지원은 한국미국 양국의 차이가 1200억 원인데, 정부가 북한 지원에는 안달이면서 우방국에는 이를 아끼려 한다.”고 비판하면서, “국민 모금 운동을 전개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까지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의 국방부 장관들이나 군 장성들이 무슨 생각들을 했었단 말인가, 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는 사람들인지, 어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인지, 그렇게 세상을 살아도 된다는 것인지, 몇 번이고 되묻고 싶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참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될 수 있으면 원자력 발전을 줄이자 라는 탈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누구고, 전시작전권을 국군이 갖자 라는 전작권 환수를 계속 늦추자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 입니까. 지역의 균형 발전 등을 고려하여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실시하겠다는 24조 원 가까운 국가사업을 일부 언론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4 대강 사업에 비교 합니다. 특히 1조원도 채 못 미치는 새만금공항사업을 지적, 대표적으로 경제성이 없는 사업인 양 꼽습니다. 4 대 강 사업 대신에 순서를 바꾸어서 진즉 추진했어야 될 사업들을 그렇게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 입니까. 근래 우리 한반도에서도 눈에 띄게 크고 작은 지진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되어 있는 울진 근처에 엄청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자니 무슨 심보입니까.

소박하게 삽시다. 능력도 별로 없는 사람이 타고 난 분수를 넘게 호의호식을 하며 살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가끔이라도 자기 자신이 뻔뻔한 사람은 아닌지 생각을 좀 해봅시다. 사람이 잘 나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잘 났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그렇게 잘 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까. 항상 아궁이에 불만 때는 사람이 있고, 밥상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평생 설거지는 모르는 사람이 있고, 손에 물 못 묻히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음식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음식 타박을 하는 꼴불견을 보셨습니까. 어느 재벌의 안방마님처럼 갑질하면서 그렇게 자식 키워서 어떻게 좋은 꼴 보겠습니까. 세상은 각자 살기 나름입니다. ‘입춘방쓰고 남은 자투리에 태사공 사마천의 究天人之際(구천인지제), 通古今之變(통고금지변), 成一家之言(성일가지언)”이라도 끄적거려 봅시다. 이 세상 썩 잘 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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