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향기가 물밀 듯이 몰려옵니다. 지금 한창 피고 있는 ‘금목서’입니다. 플루트의 음색은 야들야들 합니다. 숨 쉬는 소리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목서의 향기가 그렇습니다.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향기가 높낮이가 있어서 길고 짧은 가락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내 은목서가 피고, 가을이 조금 더 깊어지면 구골목서도 피어서 올 한 해 꽃향기의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가을에 피는 세 가지 종류의 목서들의 향기는 약간씩 다릅니다. 쉽게 금목서는 금으로 만든 플루트, 은목서는 은으로 만든 플루트의 소리에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은목서는 꽃도 희지만 향기도 맑고 투명합니다. 금목서는 향기가 섬세하고 코끝에 맴 도는 것이 더 귀족적입니다. 그 두 가지를 다 합한 것보다도 늦은 가을, 어떤 때는 싸락눈 내릴 때 피는, 구골목서 향기가 짙고 좋습니다. 마을에 구골목서가 한 그루만 있어도 온 동네가 꽃향기에 묻힐 정도입니다.
골목에 맴도는 꽃향기를 맡으며 동네를 내려오면 가을 김장용 배추와 무며 쪽파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한 낮에는 제법 햇살이 따갑습니다. 그 햇살이 벼를 톡톡 익게 하고 과일에는 단맛이 들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감나무도 그렇습니다. 이때 단 며칠 사이, 상강을 전후해서, 감이 팍 커져 버립니다. 좋은 때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무조건 길을 나서서 어느 먼 친지 집이라도 찾아가고 싶기도 하는 계절입니다. 떠났던 입맛도 돌아와서 무국이라도 곁들이면 세상에 별미가 따로 없습니다. ‘가을은 식욕의 계절이다.’ 누구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식욕은 건강의 척도입니다. 평소 식사를 거르지 않고 잘 하는 사람은 얼굴부터가 환합니다. 며느리나 사위를 잘 고르려면 ‘먹성’도 봐둬야 합니다. 어느 고장에서든 백반을 먹어보면, 그 지방의 인심을 포함해서, 음식문화의 수준을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좋은 백반집이 드물어졌습니다. 다른 지방은 잘 모르더라도, 얼마 전까지는 우리 고장 어느 관공서 부근이나 시장 골목, 또는 버스터미널 근처를 가도 괜찮은 백반집들이 꽤 있었습니다. 소위 ‘한정식 집’는 언감생심, 서민들과는 멀고, 한 때 기사식당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내를 벗어난 교외 먼 곳에 있는 식당이라도 백반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개인택시 운전하시는 분들이 찾아 간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지금은 시들해졌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몇 군데밖에 안 됩니다. 그런대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 백반집들은 나름대로 ‘노우하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음식의 맛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얘기 같지만 그러기가 상당히 어려운 얘기입니다. 둘째는 주인과 종업원이 직접 함께 조리도 하고 서빙도 하며, 그런 집에서는, 주인이 솔선수범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을 먹으면 집에 돌아와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됩니다. 얼마 전 팥죽을 먹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새알 팥죽은 싱겁습니다. 먹는 사람이 자기 식성에 따라서 소금을 넣거나 설탕을 가미해서 먹습니다. 그 날은 왠지 간이 딱 맞고, 설탕이든 소금이든, 조미료를 더 넣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물을 몇 컵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그 팥죽에 맛소금을 듬뿍 넣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음식에 조미료를 전혀 넣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 가까운 분 가운데는 식성에 따라서 조미료를 더 넣도록 원하는 분도 계십니다. 문제는 요리하는 분이 음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가 확실할 필요가 있어야겠다는 점입니다. 손님들에게 누구보다도 소박하지만 믿을 수 있는 식자재로 가족에게처럼 대접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요구 된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손님보다 음식에 일가견이 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백반집에 가서 무슨 비싼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국은 시래기 된장국이나 미역국도 좋고, 무국이나 밋밋한 김치국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서울 낙원상가 아래 ‘국밥집’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국’이 천원이고, ‘밥’도 천원이었습니다. 그냥 나오는 반찬은 무 깍두기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국은 언제나 시래기 된장국이라는데, 제대로 그 맛이 났습니다. 이윤이 얼마나 나오는지, 그렇게 해서 집세나 충당이 되는지, 생각해보면서 두고두고 나름대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느 백반집이든 반찬의 가짓수가 적어서 실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낮은 가격으로 많은 가짓수의 반찬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반(白飯)는 소반(素飯)’입니다. ‘소박(素朴)한 밥’ 아닙니까. 농사철 시골 논두렁에서 먹던 밥이고, 어릴 때부터 아침저녁으로 먹고 살고 있는 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반집이 여기저기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반찬은 몇 가지뿐이어도 괜찮습니다. 계절에 따라 푸성귀를 올리고, 짭짤한 장아찌와 젓갈이 있으면 싶습니다. 김치는 양념값이 비쌉니다. 가을철에 시골에서 배추나 무는 거의 거저나 다름없습니다. 늦가을 풋고추도 얼마든지 그냥 따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소금물에 절여뒀다가 겨울철에 꺼내어 씻어서 삼삼하게 무치면 그것대로 반찬이 됩니다. 대파와 생강을 넣고 끓인 소금무국도 옛날에는 그렇게 먹었지 않습니까. 음식은, 음식값은 누가 내든, 타박할 일이 아닙니다. 어쩌다 들어간 집일망정 고맙게 먹을 일입니다. 주인의 정성과 요리수준이 그렇다면 탓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어쩌다 다행히 입맛에 맞는 집을 찾게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는 시켜줘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백반집을 늘이는 방법이고, 많은 사람들이 더욱 더 백반을 예찬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을하/가족신문.kr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