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인간은 만물의 척도인가?

 

봄이 왔는데도, 꽃들이 피기 시작했는데도, 차마 그런 얘기들을 못 하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여러 상황들이 엄중하다보니, 너무 한가롭게 들릴까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봐지고, 그 것 보다도 솔직히 우리들에게 그럴 마음의 여유들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이토록 우울하게 봄을 맞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입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세월호 침몰 사고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정부가 국가적 재난을 대하는 자세는 확실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지레 겁을 내서 너무 허둥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한참 막바지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는 코로나19’ 감염병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 될 줄은 짐작을 못했었습니다. 큰 재난들이 다 그렇겠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단지 악몽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은 어려움을 함께 겪어봐야 사람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듯이, 어느 국가이든, 국가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떤 인간이든 그 인간의 본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떼돈을 벌까’, ‘정치적으로 야망을 이룰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있기 마련입니다. 단지 인간의 그런 추한 면을 측은하게 여기면서 그 시대 그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 빠지기 쉬운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는 더욱 위험하고 한층 더 무서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나는 전혀 잘못이 없는데, ‘무엇과 무엇을 하는 누구와 누구의 책임이다.’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현실을 의연하고 품위 있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원 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제창한 말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만물들의 영장으로서, ‘인간을 기준으로 만물의 가치 판단을 한다.’라는 말인지, ‘인간이 만물의 가치를 측정 한다.’는 뜻인지, 알쏭달쏭 합니다.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조차 애매해서 인터넷을 찾아 봤습니다. 제 나름대로 의역해서 표현하면, ‘세상만사 모든 것들은 우리들 각자의 감각에 따라 나름대로 가치를 판단 할 수밖에 없다.’라는 얘기랍니다. ‘인간이 완전체이어서 만물들의 기준이 된다.’라는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비난하는 쪽이 많았는데, ‘어느 집단의 절대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상대적인 개인들의 가치관을 옳다고 했다.’라는 것입니다. 자기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집단의 규범에서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주류 같았습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 된 경유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발병 초기에 특정국가로부터 입국 자체를 막았어야 됐었다.’, ‘정부의 대처가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등,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앞장서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며, ‘관계 장관의 사퇴와 대통령의 사과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들은 그만 두고라도, 제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말은 좀 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과거 우리나라가 민주화하는 과정 동안, 어디서 무슨 짓들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염병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들은 지적하지도 않고, 어떻게 뻔뻔스럽게 정치적인 수사법들을 구사해서 국민들을 선동하려 하는지, 아연해집니다. 지금은 단지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 당국과 의료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낼 때 아닙니까?

 

우리나리를 비롯해서, 중국 일본 미국 등, 각 나라들이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처하는 방법들이 각양각색입니다. 무엇보다 각 국가들의 체제와 지도자들의 성향이 워낙 다르다 보니 국가들 사이의 협력 관계 등, 아쉬운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유엔 산하의 범세계적인 기관인 세계보건기구(WHO)’가 초기 단계부터 각국의 방역정책을 일관성 있게 조언조정할 수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여겨집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의 늦장 대처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책임을 이웃 나라에 전가하려는 태도는 해괴한 일입니다. 곧 올림픽을 앞둔 일본 총리 아베의 후쿠시마 방사능 처리 문제와 전염병 확산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는 앞으로 두고두고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참 딱한 사람입니다. 구제불능입니다. 무슨 얘기를 했기에, 오죽하면 백악관의 기생충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겠습니까.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에게 어떤 젊은이가 제자가 되겠다고 갔답니다. 수업료를 두고 철학자와 젊은이는 계약을 했답니다. 젊은이가 교육을 잘 받아서 변호사가 된 후 첫 소송에서 이기면 수임료를 모두 철학자에게 주고, 만약 소송에 지면, 교육을 잘 못 받은 것으로 봐서, 수업료를 갚지 않기로 했답니다. 젊은이는 교육을 마치고도 빈둥빈둥 놀기만 하더랍니다. 답답한 철학자가 수업료를 받기 위해서 젊은이에게 소송을 걸었답니다. 철학자는 이겨도 돈을 받고 져도 돈을 받을 수 있겠다고 여겼답니다. 젊은이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소송에 이기면 갚지 않아도 되고, 소송에 져도, 교육을 잘못 받은 것이 되므로, 수업료를 갚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젊은이의 이름이 유아틀루스(Euathlus)’라고 이름까지 알려졌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한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미워서 지어낸 가짜뉴스일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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