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가족사진

 

누군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부릅니다. 비단실로 수를 놓은 듯 강이며 산과 들이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땅이 비옥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무슨 새삼스런 얘기냐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 가까이에 물길이 닿는 꽤 넓은 농지가 있고 높고 낮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은 복 된 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봄철이면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 한다는 것이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대단한 뉴스거리였습니다. 지금은 산에 나무도 울창하고 수리시설도 비교적 잘 갖추어져서 농사를 짓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가 옛날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은 산림녹화가 이루어진 점에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꽃이 언제 핀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해 마다 해 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의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라는 김용호 작시 조두남 작곡의 노래도 있지만, 저의 집 모란은 4월에 피었습니다. 그렇다고 노래 가사를 고쳐 부를 수도 없고, ‘시인이 살던 거기는 한참 북쪽이었나 봐!’하며 넘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운사 동백이 언제 피느냐 궁금해 하는 것도 동백꽃은 겨울에 핀다.’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선입관 때문일 것입니다. 시골에 살면서 조그만 텃밭을 가꾸면서 뜰에 몇 가지 꽃나무를 심는 것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재미가 있습니다. 엊그제 대파모종 4단을 사서 심었고, 꽃나무도 계절에 따라서 차례대로 각각 꽃을 볼 수 있도록 가꾸고 있습니다. 지금은 팥꽃과 모란이 한창이고, 작약이 다음 순서입니다.

 

5월 달력을 보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5월을 아예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아동을 노동인력으로만 봤던 모양입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기간에도 아동들이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어린이라는 이름 자체도 없었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소파는 그 당시 천도교 교령이었던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답니다. 삼일운동 자체가 천도교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소파도 장인의 뒷받침으로 어린이 운동을 했답니다. 어버이날도 제 기억으로 어머니날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어버이날로 바꿔졌습니다. 왜 아버지날은 없느냐. 어머니날만 빼고 모든 날들이 아버지날이라는 말이냐 등등의 논란도 있었던 듯도 싶고 어버이날로 바꾼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이면 집집마다 가족사진을 찍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사진관에 가지 않더라도 배경이 깨끗한 곳에서 스마트 폰으로 찍어도 기가 막히게 사진이 잘 나옵니다. 기왕에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으면 햇볕이 부드럽고 낮게 비춰주는 이른 아침이 좋습니다.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는 눈 위에 그늘이 져서 보기가 싫고 명암대비가 너무 심해서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된 사진도 스마트 폰으로 다시 찍어서 약간의 편집을 한 다음 조금 확대도 해서 액자에 넣으면 보기가 참 좋습니다. 옛날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을 생각하면 전문 사진사의 대단한 기술이 필요했던 작업들이 누구나 손쉽게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가족사진을 찍으려 해도, 가족이 다 모이기도 힘들뿐 아니라, 가족들 가운데 선뜻 누가 모여서 사진을 찍자고 하기에는 멋 적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치 단체 같은 데서 운동이라도 벌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엊그제 저녁 갑자기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저의 어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외갓집에 어머님 젊으셨을 때 사진이 남아 있나 싶어서 외사촌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마 있다면 큰 오빠 집에나 있을 거예요. 제가 알아볼께요.”라는 낭낭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스마트 폰으로 톡톡하며 사진이 왔습니다. , 거기에 어머님 처녀시절 아리땁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오빠! 그런데 잘 모르는 사진도 한 장 왔는데, 그건 안 보냈어!” “아니, 그 사진도 보내봐!” 그랬더니 또 톡 하며 또 사진이 왔습니다. 이 번에는 놀랍게도 저의 아버님 젊으셨을 때 사진이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결혼하신지 11 개월 만에 6 25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합니다. 최근에 알아보니 전주공업고등학교 건축과 32회 졸업을 하셨는데, 그 때 학생복을 입으신 사진으로, 어머님과 혼담이 오고갈 때 보내신 사진 같았습니다.

 

아버님이 학생복을 입고 찍으신 사진을 보니 놀랍게도 저의 대학생 때의 모습과 거의 똑 같았습니다. 대학을 함께 다녔던 친구에게 어머님과 아버님 사진을 각각 보내줬습니다. 잠시 후 친구에게 전화를 직접 했더니, “그게 너의 아버님 사진이었냐? 나는 왜 네가 대학교 사진을 보냈냐 싶었다. 그래서 확대해서 귀를 봤더니 너하고 똑 같고, 손을 잡고 있는 모양도 똑 같더라!”라고 했습니다. 아버님 사진을 가만히 드려다 보니 낯이 익은 곳이었습니다. 왼편 냇가에 다리가 보였는데, 저의 고향 익산군 춘포면 용연리 판문 바로 그 신작로였습니다. 친구는 저의 어머님이 익산 어느 요양원에 계실 때 몇 차례 문병을 다녔었답니다. 한 번 찾아 뵐 때 마다 줄잡아 4시간 정도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눴답니다. “, 무슨 말씀을 그렀게 많이 하시데?” “응 다음에 직접 만나서 다 얘기해 주께!”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 집집마다 가족사진 꼭들 찍으십시오.

을하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