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기원전, 기원후‘라는 말은, 세상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오신 후로 나눈다는 뜻으로, 6세기 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코로나19 이전’과 ‘코로나19 이후’로 이 세상을 구분 짓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일이 잘 됐든 못 됐든, 지나간 일을 돌이켜 왈가왈부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를 두고도,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논의를 집중해야지, 언제 누가 어떻게 잘못해서 이런 상황이 됐는지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물에 아이가 빠졌으면 우선 구출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인류의 생존이 달렸다는 재앙 속에서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먼저 그 분야 전문가의 생각을 듣고, 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국가나 단체에서 정치가나 지도자들이 자기 자신 개인의 이해와 판단에 의하여 코로나19를 대처해왔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감염을 우려하여 주정부가 만류하는 데도, 대통령 선거유세를 강행했다고 하고, 기자들보는 앞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름대로 ‘코로나19가 위험하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겠지만, 지도자로서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상황은 일본의 아베총리도 마찬가집니다. 검사를 축소시켰다는 동안에 지역에서 감염이 얼마나 많이 확산되었겠습니까.
언론에서 코로나19의 바이러스에 대한 비관적인 소식을 연이어 전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변종들이 생겨나고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만든 백신이 변종이 생기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들립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체의 정상세포에 침투한 후에 인체세포로 하여금 촉수를 뻗게 하여 다른 세포를 빠르게 공략한다는 섬뜩한 연구결과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 빨리 백신이 개발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조만간에 개발이 성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설령 곧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동맹’이니 하면서, 선진국들이 백신을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노약자나 기저질환을 갖은 사람들에게 위험하고, 건강하면 덜 위험하다고 알려져, 젊은 사람들이 활동의 폭을 넓혀서, 감염자들이 늘고 있고, 감염을 더욱 확산 시키고 있다고도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지키는 방법 밖에는 다른 뾰쪽한 묘수가 없는 실정 같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바꿨다.’라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상생활의 틀 자체를 ‘감염이나 확산이 안 되도록’ 바꿀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의미 입니다. 이제는 나라별로, 지역별로, 동네별로, 자급자족 형태로, 스스로 자가 격리하면서, 원격으로 교류하는 삶의 형태가 굳어질 것으로 보여 진다는 것 입니다. 앞으로 외국과의 원만한 왕래도 최소한 2년은 더 지나야 가능할 것이랍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공연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틀이 만들어 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위해 느슨해진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지 못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대로는 확산을 막을 수가 없지 않을까?’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딱 그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든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한지 6개월 남짓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1000만 명 이상 감염이 되고, 50만 명 이상이 사망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다행히 숨을 고르고 있는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확산 직전의 위험스런 상황으로 보입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나 정치가들이 더 정신 차려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국회가 걱정입니다. 법사위원장을 놓고 여야가 싸우던 모습이 가관 아녔습니까. 여당 입장에 얼마나 법사위원장 때문에 그 동안 갑갑했으면 야당에게 넘길 수 없다하고, 야당은, 거꾸로 얼마나 그 자리가 좋았으면, 다른 상임위원장은 다 필요 없으니, 그것만 달라고 했겠습니까. ‘공수처 출범’ 제대로 되겠습니까? 국회의원들에게 왜 ‘무노동 무임금’ 적용이 안 된 답니까?
인류의 미래가 불안 합니다. 우선 온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세계적지도자가 없습니다. 지구상에 강대국은 있지만, 문자 그대로의 선진국은 없어졌습니다. 어느 나라의 지도자라고 구분 할 필요조차 없이 거의 모두 저속하고 속물근성이 몸에 밴 사람들입니다. 트럼프나 아베처럼 국제기구를 사교클럽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류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것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촛불혁명을 거쳐 새로운 지도자를 뽑을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꿈만 같습니다. 우리들이 다른 나라 정치지도자들의 자질을 의심하고 비판할 수가 있는 것도, 우리들의 경험에서 얻은 안목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 것입니다. 새 시대를 맞아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겠다.’라는 높은 자부심을 갖읍시다. 그런 든든한 믿음으로, 코로나19 등, 이 어려운 고난의 시대를 극복해 나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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