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음악의 기쁨

 

가을이 깊어 갑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따끈한 차 한 잔에도 제법 정취가 느껴집니다. 우수수 떨어져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가로수 이파리들을 보노라면,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월명사의 제망매가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화면 크기는 작았지만 그렇게 아름다웠던 초창기 컬러영화 분홍신(The Red Shoes, 1948년 영국작품)’의 마지막 부분, 주인공 발레리나와 함께 아무도 없는 거리를 몰려다니며 춤를 추던 온갖 물성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나간 것들은 아름다운 것인가, 어느 외국어보다도 더 낯설고 어려웠던 향가가 떠오르고, 요즘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쾌쾌 묵은 옛날 영화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계절이 바뀌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달라집니다. 봄이면 분덜리히 부르는 베토벤의 가곡 아델라이데가 수도 없이 나오고, 가을이면 브람스의 교향곡이나 드보르자크의 현악사중주곡들이 자주 방송 됩니다.

 

음악의 기쁨이라는 책을 구했습니다. 프랑스에서 1947년에 첫 번째 시리즈가 출간 되었는데, 2014년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글씨가 깨알같이 작고, 시리즈로 네 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었습니다. 아껴서 읽었다고 할까, 시나브로 읽다보니, 첫 번째 권을 읽는데도 몇 달이 걸렸습니다. 내용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194410월부터 196610월까지 꼬박 22년 동안, 일요일 낮에 실황으로, 음악가 둘이 각 분야의 전문 연주가를 한 분씩 초청하여 연주를 곁 드리면서, 대담을 나눈 것입니다.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녹음도 아니고, 실황으로 그 오랜 세월동안 방송을 진행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롤랑 마뉘엘(Roland-Manuel, 1891-1966)과 나디아 타크린(Nadia Tagrine, 1917-2003)이 첫 방송을 시작할 때는 53세와 27세였습니다. 마뉘엘은, 196610, 방송을 마치고 11월에 75세로 서거했는데, 타크린은 49세였습니다.

 

마뉘엘은 유태계 벨기에 출신으로 음악 학자이자 파리음악원 미학교수(1947-1961)였습니다. 청년시절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와 가깝게 지냈는데, 사티가 마뉘엘에게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를 소개 했는데, 마뉘엘은 라벨을 깍듯이 스승으로 모셨답니다. 타크린은 의사의 딸인데, 검색해 보니, 아리땁고 재기가 넘치며 지적인 호기심이 충만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방송을 시작할 때 미혼이었지만, 몇 년 뒤, 스코틀랜드에 갔다가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남편이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해로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답니다. 타크린은 마뉘엘을 평생 정신적인 아버지로 존경했다고 합니다. 대담을 봐도, 주로 타크린이 마뉘엘에게 질문을 했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으로 궁금한 점을 캐묻습니다. 한편 타크린은 18(1958-1975) 동안, 매 달 15일에, 또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도 방송했었답니다.

 

품격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려면 무엇인가 벌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적성에 맞지 않는 취업을 해서 심신이 피곤해도 어렵게 참고 견디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누구는 어떻게 태어났기에 빈둥빈둥 놀면서도 호의호식하며 이 세상 온갖 호사를 다 누리며 사는지, 그 꼴을 바라다보노라면, 스스로가 노엽고, 극심한 박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말기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부자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를 어떻게 쓰느냐가 그 사회의 품격을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것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뒤 짚어 보노라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정치가와 언론, 관료들, 자칭 우리 사회의 원로라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언론과 정치가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어느 사람이 스마트 폰에 올린 몇 마디 허접한 얘기를 기사라고 여과 없이 지면에 올리는 것이 언론이고,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거짓뉴스를 떠벌이는 사람을 정치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직 고관을 했다며, 자칭 우리 사회 원로라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염려 한다, 그런 언론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내는 것은 무슨 수작들 입니까. 군사독재시절 장관했다는 것이 자랑입니까 수치입니까.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아서, 밑에 사람들 괴롭히기나 하고, 어떻게 일을 했겠습니까. 저들이 언론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언론이 아닙니다. ‘뉴스아웃렛(Newsoutlets)’이라고, 간판은 크고, 발행부수가 얼마라고 해서, 사실 관계 확인을 소홀히 하는 그런 언론들은, 우리 사회에서 퇴출 되어야 할, 범죄 집단들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선순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체제의 여러 혜택으로 쌓은 부는, 그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자주국방을 위한 국가의 기간시설들의 확충을 비롯하여 교육, 소외계층들을 위한 안전망 구축 등에 쓰여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는 구성원들의 품격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음악의 기쁨이라는 꽤 오래 된 옛날에 쓴 책을 읽으면서, 22년이나 계속 되었다는 일요일 낮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방송했던 프랑스가 왜 문화강국인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송이 되었다면, ‘청취자 수는 많았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 더 중요하겠다.’ 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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