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에 버드나무 빛깔이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갈색으로 늘어진 실버들 가지들이 나날이 연초록 배추빛깔로 바뀌는 모습들이 곳곳에 선경을 이뤘습니다.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마상청앵도()’라는 그림이 생각납니다. 어떤 선비가 말을 타고 가며 버드나무에서 우는 한 쌍의 꾀꼬리 소리에 고개를 돌려 듣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저는 어쩌다가 읽게 된 그 그림의 화제가 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호가 제일 길다는 ‘고송류수관주인() 이인문(1745-1824)’이 쓴 것 입니다. 강의 양 편에 버드나무가 늘어섰는데, 한 쌍의 꾀꼬리는 베를 짜는 ‘황금 북’이고, “안개 끼고 봄비가 내리는 강의 양 쪽을 새가 날아다니며 비단을 짠다.”며, 안개 낀 봄 강을 꾀꼬리들이 짠 비단으로 비유한 내용 입니다. 여기 화제는 자호를 ‘기성류수고송관도인()’이라며 한껏 멋을 더 부려놨습니다.
얼마 전부터 동네에 마을버스가 생겼습니다. 시내까지 하루 네 번 다니는데, 당분간 선전기간인지, 무료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집은 외따로 있어서 동네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모르고 지나가는 때가 많습니다. 엊그제도 마을버스 속에서 “오후면 산보를 하셨는데 어찌 아저씨가 요즘 통 안보이시데요?”라며 동네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더니, “우리 집 양반이 작년 11월에 돌아 가셨어요.”하셨습니다. 제가 까마득하게 몰라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요양병원에 계시다 갑자기 그렇게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든 그렇게라도 마을버스를 타다보면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동네 어른들과 낯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습니다. 또한 꼬박 32년을 이 동네에 살면서, 저의 아이들은 이미 여기가 고향이 됐고, 그런데도 아직 인사를 못 드린 분들이 계시니,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반성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책을 냈다고 두 권을 보내 왔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재직했고, 방송통신위원장을 역임했던 이효성 교수가 그 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서 ‘계절 탐구’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펴낸 것입니다. ‘계절 탐구’는 24절기를 절기별로 세시풍습과 그 절기에 관련 된 다양한 시들을 곁들였고, ‘우리는 누구인가?’는 인간 본성과 특성에 관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절 탐구’는, 24절기로 떠나는 문화여행이라는 부제처럼, 시와 함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책은 비록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특성에 대해서 워낙 내용이 충실하고 짜임새 있게 써서 이 교수의 지적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맹인들이 각각 코끼리를 만지는 식’이 아니라 ‘맹인일지라도 한 사람이 코끼리의 여러 부위를 만지는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특성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즉,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어떤 마음인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로 분류한 다음, 다시 각각에 대하여 일곱 가지씩 개념을 선정하여 고찰하였습니다. 즉, 인간의 본성과 특성을 28가지 서로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한 셈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느냐. 식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본성과 특성을 파악할 수도 있고,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각기 다른 일종의 측정도구를 써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기본적인 개념을 국내외 각종 사전에서 찾아보고 구체적으로 살핀 것도 문제의 본질을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가는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자신들의 본성과 특성을 확인하다보면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가 훤하게 보이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라는 항목에 ‘속물근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속물근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대체로 어느 정도의 속물근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랍니다. 또, “성급하게 또는 속되게 속물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속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 입니다. 사실 교양과 식견을 추구하는 자체도 속물적인 속성에서 아주 자유로운 것은 아니고, 속물과 속물이 아닌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 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얼마나 억제하고 다스리느냐에 차이가 있고, 속물적 속성이 아예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랍니다. 인간은 대체로 속물이고, 따라서 남을 속물이라고 욕하기 전에 자신의 속물근성을 성찰하고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가들이 설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안에도 그런 속물근성이 있는지 자제하고 살피라는 뜻 같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3월 1일 삼일절은 국경일이어서 해마다 곳곳에서 경축행사가 열립니다. 언제부터인가 삼일절 경축행사에서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언급을 해도 뉴스고, 아무런 언급을 안 해도 뉴스입니다. 금년에도 아니나 다를까, 별별 뒷말이 무성합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 차관이었다는 사람은 “최악의 한일 관계 속에서 한국의 대일외교는 비굴해지고 있고, 정부–여당은 저자세가 되고 있다.”며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는 문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해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답니다. 현재 신임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가 일본에서 장관 면담도 못하고 어떻게 대접 받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이 왜 저러나 싶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런 속물근성을 가진 사람을 보면 “우리는 누구인가?” 라며, 우리 인간들의 본성을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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