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다반향초(茶半香初)

                              

 언제 어디선가 스쳐지나간 것 가운데, 어렴풋하게 생각이 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던지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멜로디가 맴도는데 몇 날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그것이 슈베르트의 즉흥곡이었구나!’라고 풀릴 때가 있었습니다. 판소리에 나오는 놀부의 화초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중학교에 다녔을 때 같습니다만, 김제 용지에 있는 외갓집에 갔을 때입니다. 외숙의 책 어디에선가, 무슨 문학 독본 같았는데, 시가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고향은/저 산 너머 또 저 구름 밖/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나는 문득/가로수 스치는 저녁 바람 소리 속에서/여엄염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입니다. 그 시가 어찌나 좋던지, ‘누가 쓴 무슨 시인지, 어느 시의 일부분인지참으로 궁금했습니다. 20여년이 흘렀을까, 김기림 시인이 해금 된 뒤에야 향수라는 시의 전문임을 알았습니다.

 

茶半香初는 초정 김상옥(1920-2004) 선생이 쓴 멋들어진 붓글씨 때문에 기억이 됐습니다. 우리들이 두루 알고 있는 봉선화20살 때인 1939, 가람 이병기 선생의 추천으로, ‘문장에 실린 시조랍니다. 윤이상이 1949년에 편지라는 제목으로 작곡도 했는데, 곡이 향토적이고 순박하여 좋습니다. 초정선생님께서는 다반향초차를 반이나 마셨는데도 향기는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해석 하셨습니다. 그 뒤 어디를 보니까, 다른 어떤 사람은, ‘차가 거의 반이나 되어 향기가 처음 나기 시작했다.’고도 했습니다. 그 당시 전주 홍지서림 앞에 있었던 헌책방 책과 사람들의 주인에게 누구 한문 아실만한 분이 들리시면 여쭈어 보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얼마 뒤, 전북대학교에 계셨던, 김교선 교수님이 들리시더니, 여러 가지로 다르게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차가 반이나 되어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가 좋겠다.”고 하시더랍니다.

 

언젠가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에 들렸습니다. 뜰에 모란이 가득 피어 있었고, 사랑채의 앞에 石年이라고 쓴 돌기둥이 해시계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사랑채주련을 보니, 추사체로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라는 대련이 걸렸습니다. 무슨 선시의 한 구절 같은데, 그 것이 무슨 뜻이고, 출처는 어디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엊그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먼저 출전인데, 그 글귀는 중국의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쓴 것이다.’는 것입니다. 전에 검찰총장을 지낸 김진태 씨의 블러그에는 구체적이고, 감사출신이라 저러나 싶을 정도로, 단정적으로 황정견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했습니다. , 누구는 그 것이 아니랍니다. ‘水流花開는 여러 시인들의 글 곳곳에 나오지만, 시 전체가 나오는 어떤 출전도 아직 발견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추사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도 대련의 출전에 대한 얘기는 없고, 추사가 쓴 水流花開라는 글씨를 두고,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강상시절에 초의를 위해 써준 글씨로 추정한다.’고 하며 대련의 해석을 했습니다. ‘고요히 앉은 곳, 차를 마시다가 향을 사르고/오묘한 작용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핀다.’ 참 간명한 해석입니다. 사실 水流花開라는 뜻은 한양대학교에 계셨던 정민 교수 주장이 새롭게 힘을 받는 것 같습니다. 대련에 水流花開’,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고 했으니, 구조적으로 상응하려면, ‘茶半香初()와 향()’을 구분해서 해석해야 한답니다. 정교수의 대련에 대한 해석을 보면, ‘고요한 곳에 앉아 차를 마시다 향을 피우니/신묘한 기운 가운데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라 했습니다. 오래전의 김교선 교수님 말씀처럼 茶半香初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글귀로 보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제대로 이해하는데 장애요소가 될 때가 많습니다. 소위 알음앓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사전에 알고 있는 지식이 편견이 되어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크나 큰 어려움이 될 수가 있는 질환이라는 것입니다. 별로 알지도 못 하면서 자신 만만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우리들 자신을 포함해서, 참으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무슨 감투라도 쓰면 그 기고만장한 꼴이 가관들 아닙니까. 또한, 현직에 있을 때와 물러났을 때의 사람 됨됨이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행정적인 업무상 맡은 직무 수행을 본인의 타고난 능력과 인품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비극입니다. 집을 지킨다는 역할로 보면 주인과 개는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주인인 듯 착각하는 개들이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러시아의 문호 도스또예프스키(1821-1881)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일본 사람 요네가와 마사오(米川正夫)’가 쓴 책인데, 도스또예프스키가 21살 때 연인과 여행을 가다가 비스바덴이라는 곳에서 룻렛 도박으로 5000 프랑을 딴 얘기가 있습니다. 그 뒤, 도스또예프스키는 45살 때, 20살짜리 젊은 여자와 두 번째 결혼을 합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어린 신부와 신혼여행 중에 또 다시 룻렛도박으로 경비를 모두 잃습니다. 21살 때 땄던 그 5000프랑 때문에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잃고 고초를 겪게 되는지 모릅니다. 한 번 배반한 사람은, 그 쾌감을 끝내 못 잊어, 상대가 누구든 쉽게 배반을 하게 됩니다. 분수에 넘게, 언감생심, 대통령 하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고 심한 모멸감이 느껴집니다. 도쿄2020에서 양궁 3관왕 선수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얼거렸다는 말을 되뇌어봅니다. ‘쫄지 말고 대충 쏴!’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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