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 입니다. 추석도 가까워 오고, 산소에 들려봤습니다. 멀리에서 바라보니 산소에 누가 먼저 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사촌 동생이었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살짝 부끄러웠습니다. 형이 해야 할 일을 동생이 먼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우는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몇 년 전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으로 내려 온 뒤부터, 시간만 나면, 산소 일을 돌보고 있는 것 입니다. 언제 산소에 가도 보기가 좋으려면 해마다 네 다섯 번은 벌초를 해야 합니다. 갑자기 별 준비 없이 산소에 들렸다가는 당황하기 십상입니다. 언제 가더라도 무언가 항상 할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곳곳에 ‘벌초 대행’ 현수막들이 눈에 띕니다. 고향을 떠나서 외지에 있다 보면 산소를 가꾸는 일이 은근히 마음에 걸립니다. 옛날 어른들께서는 어떤 사정이 짐작 되는 사람의 산소는 남 몰래 돌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누구나 고향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을 입고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라는 잠재의식이 꼭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아는 사람도 별로 남아있지를 않고, 고향에 찾아가도 무슨 할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크게 출세하여 고향에 찾아간들 뭐 하겠습니까. 옛날 중국의 어느 술꾼 얘기처럼,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고향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감이나 되기 쉽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서울에서 초등학교 동창 둘이 내려와 저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간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춘포 지역의 기독교 초기 전교 과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대장교회의 원로목사님도 뵙고, 호남지역 기독교 초기 전교 유적지인 우리들의 고향 춘포면 곳곳을 함께 둘러봤습니다. 우리들은 시간여행을 하며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가끔 ‘우리들의 삶의 공간을 서로 나누며 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언제부턴가 저의 시골 마을은 일정 부분 실질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동네에는 회관이 남녀 둘이 있습니다. 모임을 만들어, 기금도 따로 있고, 각각 운영을 한답니다. 전기료와 연료비는 시에서 지원이 있는 모양이고, 연중 남자들과 여자들의 행사가 다릅니다. 부녀회에서는 김장을 담가서 식사도 함께 해결 합니다. 겨울철에는 난방비가 많이 들다보니 대부분 회관에 함께 모여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거점관광마을’로 선정되어, 마을에서 생산 되는 농산물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행사도 갖습니다. 저의 집에 동창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마을에 공동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뿐이 아니고 저의 동네 어느 집이든 손님들이 왔을 때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아쉬웠습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듀얼라이프’라는 것이 있답니다. 주중과 주말에 도시와 농촌을 번갈라가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형태라고 합니다. 산업화로 일찍이 지방인구가 극감했던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모색했었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도시와 지방이 결연을 맺고 그 지역의 농산물이나 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교류를 계속 갖으면서, 상호 방문도 하고, 게스트하우스도 만들고, 개인집에서는 게스트룸도 만들어서, 상호 방문하고 체류도 할 수 있도록 사업을 유도 확대해 나갔다는 것 입니다. 도시에 직장이 있는 사람은 주중에는 도시에 있다가 주말이 되면 지방에 내려와 도시로 다시 되돌아가는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이 꽤 많아졌다고 합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람의 연령별 비율이 20대와 30대가 거의 30%씩이나 된답니다.
도시든 농촌이든, 공동체에 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는 공간들을 넓혀줬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마을회관들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경로당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선은 공동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새로운 공간이 더 확보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공간의 여유가 있다면, 게스트룸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펜션들은 가격이 너무 비싸고, 저렴한 가격으로 머물 수 있는, 마을회관에 딸린 게스트하우스든지 또는 개인집 게스트룸이든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도시로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그 만큼 지방의 인구가 감소할수록, 사람들은 쓸쓸해지고 인심은 더 각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신문을 보다가 ‘마을회관으로 배달해서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아도는 책들도 관리만 잘 될 수 있다면, 그런 공간이 있다면, 참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인무원려(人無遠慮)면 필유근우(必有近憂)’라고 했습니다. 요즘 정치가들 보십시오. 여당이나 야당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입만 열면 엉뚱한 소리들을 합니다. 다 기본이 갖춰지지 못했고, 교양이 부족한 탓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그 것도 언감생심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그런 엉터리들인 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그 동안 멀리 바라보는 깊은 사려 없이 정치가들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인무원려(人無遠慮)’였습니다. 반드시 갑자기 올 우환이었습니다. ‘필유근우(必有近憂)’ 아닙니까. 이번에 대통령을 뽑을 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해야겠습니다. 보수언론들이 아무리 설치더라도, 저들이 왜 그러는지, 빤히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삶의 공간을 두루 나눠 갖으면서, 그 공간 안에서 그들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들인지 확실히 보여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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