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밀폐된 상자 속에 아직도 갇혀있다는 ‘희망’이 언뜻 반짝거리는 듯합니다. 무엇이 더 좋아질 것인가, 무엇인가 더 좋아지는 것이 많기를 막연하게나마 기대해 봅니다. 언감생심, 어차피 터무니없이 큰 욕심을 내봤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뻔한 사실이고, 결국 우리들의 바람은 지극히 소박한 것들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농부가 올해는 논밭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 아무리 머리를 짜낸다고 한들 무슨 특별한 묘수라도 있겠습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직장에 다니거나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가 실현 가능한 무언가를 염원하다 보면,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의 건강이 제일이지.’, ‘올해도 아무 탈 없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아야 할 텐데.’ 같이, 참으로 간절하고 기본적인 바램만 남게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본인보다도, 가족들에 대한 염원이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전우익(1925-2004) 선생이 쓴 책이 있었습니다. 1993년 신경림 시인의 도움으로 펴낸 책이라고 합니다. 전우익 선생은 그 밖에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사람이 뭔데’ ‘해인사를 거닐다’와 같은 책들도 쓰셨습니다. 선생의 글은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느낌이 옵니다. 경북 봉화의 대지주 아들로 태어나 경성제국대학 중퇴했고, 8.15 광복 이후 좌익성향의 활동을 하다가, 6.25 전쟁 이후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6년간 투옥되었고, 그 이후 40여 년을 고향인 봉화에서 묻혀 살았답니다. 신경림 시인의 말씀에 의하면, 전우익 선생이 서울에 올라오실 때면 거의 반드시 봉화에서 간고등어를 사서 갖고 오셨답니다. 봉화가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내륙이라 간고등어는 모름지기 그만큼 숙성되어야 더 맛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답니다. 사람이 함께 사는 재미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코로나19 사태는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이라는 또 다른 변종이 등장함에 따라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오미크론 다음에 계속해서 또 다른 변종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변종일수록 증상은 약화 되고 감염력은 높아진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병의 증상이 약화 되어 ‘무증상 상태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이 증가한다.’라는 뜻 같았습니다. ‘코로나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라는 시나리오 가운데, 백신이나 치료제보다, ‘독감처럼 되어 완전 퇴치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전망이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백신을 부스타까지 세 번 맞는 경우도 코로나에 감염되는 현 상황에서 보면 환자가 중증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결국 최종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백신을 맞고, 코로나에 감염은 되더라도, 사망하는 비율만 줄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백신은 꼭 맞아야만 될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옛날 코로나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현재와 같은 상태로 언제까지나 이대로 지낼 수도 없습니다. 코로나19의 변종인 델타나 오미크론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백신을 공급받지 못한 가난한 나라들에서 에이즈 등등의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된 경우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답니다. 어느 나라가 잘 산다고 해서 백신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도, 전 세계적으로 고루 백신이 보급 안 된다면 코로나는 막을 수 없고, 더 많은 변종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약 바로 자연의 섭리라면, 힘 있고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로 끔찍한 악몽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셈입니다. 인류가 모두 함께 잘 살지 않는다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상(無常)’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뜻 아닙니까. 옛날에 좋았던 어떤 원칙만으로 끝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흥망성쇠를 ‘변화와 그에 대한 적응’으로 일관되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보수신문들의 기사에 대한 댓글들을 읽어보면 소름이 돋는 글들이 많습니다. 나이는 몇 살이나 되는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때로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틀리고를 떠나서, 오로지 ‘악’만 남아있지 않나 공포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악’에 바친 사람들의 말은 가려서 들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떨결에 하는 말이라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사람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모르는 채, 그 뜻을 새겨보지도 않고, 함부로 하는 말이라면 더욱 심각합니다.
앞으로 봄이 올 때까지 한참 남았습니다. 눈발이 날리고, 꽁꽁 얼어붙는 추운 날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점점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올해도 이일 저일 뒤숭숭할 것이 뻔해 보입니다. 우리 인류가 1900년대에 그렇게 참혹한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었으면서도 그것이 그다지 큰 교훈이 못 되지 않았나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을 보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당시의 일부는 사악하고 나머지는 무능했던 정치가들을 보는 듯한 하고, 나라마다 어떤 방법이 됐든, 엉터리 같은 선동에 쉽게 휩싸여서 그런 지도자들을 뽑는 그 나라의 국민도 당시와 많이 닮은 듯 우려스럽습니다. 어느 나라의 국민이 어떤 선동적이고 사악한 정치가를 지도자로 선출하든 그 나라의 운세가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올해 우리나라 운세는 어떻겠습니까?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