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박용래 약전(略傳) 4, 이문구

<평전> 

                          박용래 약전(略傳)

                                                이문구

                               4

 박시인은 눈물이 많았다. 그렇게 불러도 된다면 가위 눈물의 시인이 그였다.

 그러나 박시인의 눈물은 아무나 흘릴 수 있는 여느 중생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난에 울지 않았고 애달픔에 울지 않았고 외로움에 울지 않았다. 그렇다. 그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한 것은 삶의 부질없음, 누리는 것의 덧없음, 헤어짐의 속절없음 따위, 인생의 유전(流轉)에서 오는 삼재팔난(三災八難)이 아니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뿐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러기에 그는 한 떨기 풀꽃, 한 그루의 다복솔, 고목의 까치둥지, 시래기 삶은 냄새, 오지굴뚝의 청솔타는 연기, 보리누름철의 밭종다리 울음, 삘기 배동 오르는 논두렁의 미류나무 호드기 소리, 뒷간 지붕 위의 호박넝쿨, 심지어는 찔레덤풀에 낀 진딧물까지,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런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구절초(九節草)’를 보면 그 눈물의 내력이 멀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시인의 눈물은 그의 연륜(年輪)과 동반하여 흘러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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