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재채기는 숨길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멀리서 봐도,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꽃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사진: 야모란(野牡丹)
타이베이(臺北)식물원에서도 그랬습니다. 식물원이라기 보다는 임업시험장이었는데,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었습니다. ‘야모란’이었습니다. 당나라는 현종때가 가장 전성기였고, 또 그때부터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두보가 있었고, 이백이 있었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습니다. 당 현종은 모란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연못을 파고, 갖가지 종류의 모란을 각지에서 구해서 심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양귀비를 차지하여 함께 놀았습니다. 이태백이는 장안 술집에서 잔뜩 취한 채 억지로 배에 실려서 불려왔습니다. 배에서 내리면서 태백이는 고력사에게 신발을 벗기도록 했습니다. 고력사는 안록산의 난을 일으킨 주모자이지 양귀비의 애인이었답니다. 그것이 이태백에게 큰 후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려온 이태백이가 양귀비와 모란꽃을 두고 지은 시가 ‘청평조’입니다.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로화농)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구름을 보면 그대의 옷이 생각 나고,
꽃을 보면 그대의 얼굴이 생각난다.
봄바람은 난간(欄干)을 스치고 이슬방울은 아름다운데,
만일 군옥산(群玉山) 기슭이 아니었다면
구슬을 아로 새긴 요대(瑤臺)의 달빛 아래 우리 서로 만났을 것이네.
뒷날, 후환이 된 구절은 ‘군옥산 기슭이 아니었다면’입니다. 양귀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양귀비와 서왕모를 비교한 것은 ‘턱도 없다’고 이간질했기 때문입니다. 양귀비를 선녀에 비교한 것인데, 그게 몇 천년을 산 서왕모이고, 양귀비도 그렇게 흉측하다며 흉본 것이라고 양귀비를 부추겼습니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아름다움에는 독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울 수록 그 독은 치명적이라 했습니다. 야모란도, 와호장룡에서의 장쯔이 처럼, 촌스럼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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