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칼럼>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가을 날씨가 하루하루 잠자리날개처럼 반짝거리듯 투명하고 맑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들이 이어지면 어떤 분과 나눴던 대화 한 토막이 떠오릅니다.

“테니스 칠 줄 아십니까?”

“별론데요.”

“바둑 둘 줄 아십니까?”

“그것도 별론데요.”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요즈음 같아서는 골프 칠 줄 아시느냐고 묻었겠지만, 그 당시는 테니스가 유행이었습니다. 저에게 질문을 하셨던 분은 평소에 테니스를 즐기셨고, 날이 궂으면 바둑을 놓으셨습니다. 새벽에 골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낚시질 하러 가는 사람들 속을 모르겠다고 하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이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저는 전주 근교 시골에서 살고 있는지가 만 21년이 넘었습니다. 이곳에서 가을 김장채소는 처서를 전후한 무렵에 씨를 뿌립니다. 금년에는 지난 8월 23일이 처서였습니다. 저는 쪽파를 약간 심었고, 고수씨앗을 두어 두렁 뿌렸습니다. 고수는 향이 짙어서 아무나 처음부터 즐길 수가 없습니다. 지중해연안이 원산지고, 인류 최초의 향신료라고 합니다. 고수씨앗은 모양이 들깨보다 조금 굵습니다. 씨앗껍질이 두꺼워 미리 껍질을 벗긴 후 파종해야 합니다. 고수씨앗을 뿌리고 나니 싹이 언제쯤 올라오나 궁금했습니다. 한 달이 넘은 엊그제야 겨우 떡잎 두 장과 그 사이로 갈라진 고수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반가웠습니다.  

시골은 이른 아침 경치가 좋습니다. 산골짜기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지난 한 달가량은, 경치보다도, 일어나자마자 눈을 부비며 고수밭으로 갔었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아침 마다 방영되는 NHK음악회 때문입니다. 위성안테나와 디지털튜너를 설치하면 일본위성방송채널이 10여개 잡힙니다. 화면이 HD로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인터넷으로 누가 언제 무슨 음악을 연주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협주곡 1번도 NHK에서 봤습니다. 2009년 11월 일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최연소로 우승하여, NHK 오사카 여름연주회의 독주자로 출연했을 때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고전음악을 즐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음악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기독교방송에서 밤 10시 ‘명곡을 찾아서’라는 프로가 인기였던 시절입니다. 1970년대 중반 군산여고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생각이 납니다. ‘가정희망음악’을 몇몇 선생님들이 조그만 트랜지스터라디오 둘레에 모여서 듣곤 했습니다. 우리들 삶의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삶에 대한 애틋함은 그 때만 못해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유형무형의 아름다운 보물들이 많습니다. 우리 인류의 공동자산으로써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받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국가나 개인의 소유로 접근이 엄격하게 통제된 것들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보물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열려져 있는 상태로 남겨져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고,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누가 그 가치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못 듣게 합니까? 누가 유크리트의 기하학책을 못 읽게 합니까?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아예 없거나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이 부족해서입니다. 대학교영문학과에서 쉐익스피어가 없어졌다고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잘못 아니겠습니까.

 

시골생활을 하면서 느낀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족끼리 마당의 잡초를 뽑거나, 텃밭을 가꾸면서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지, 아이들이 풀을 메고 집안일을 거들어 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슨 공부들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부모님이 밭에서 일을 하면 뛰어나와서 도와드려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저희 집의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 평소 목공일을 좋아해서 오디오시스템이 바뀔 때마다 수납장도 짜고 치자물을 우려내서 도색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독주택이니 가을이면 창호지도 다시 발라야 합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그러는데, 아이들은 일은 커녕, 함께 얘기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가정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밥상머리에서 무슨 얘기을 할 수가 있습니까. 식구들이 일을 거들면서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의 친구가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조그만 정자를 지었다고 해서 참 부러웠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공자님께서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서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볼수록 성현다운 말씀이십니다. 맹자님은 군자삼락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들에게 탈이 없는 것,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봐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 천하의 영재들을 모아 가르치는 것”이 군자의 즐거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성현들의 말씀에는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지혜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삶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 됩니다. 무언가 우리 스스로 사는 재미를 만들어보자는 말씀입니다.

눈이 내리기 전에, 꽃이 피기 전에, 우리 그렇게 해봅시다.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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