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삶에도 향기가 있습니다.

 

 

 <칼럼> 삶에도 향기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봉남에 사는 친구가 청국장을 가져가라는 연락이었습니다. ‘고조선 이래 조금도 변하지 않은 방법으로 심고 가꿨고, 삶고 띄워서, 어제야 절구에 찧었다’고 합니다. 친구를 만나니 ‘내년부터는 다른 농사는 더 이상 못 짓겠고, 메주콩은 먹을 만큼만 심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도 어언 나이가 들고 힘이 부치는 눈치였습니다.

 

가을이 되면 시골에서는 메주를 쑤고 청국장을 담습니다. 메주는 겨우내 띄우지만 청국장은 곧 찌개를 끓여 먹습니다. 할머님께서는 어린 손주에게 ‘먹어봐라, 달큰하지 않느냐’고 묻곤 하셨습니다. 청국장은 손주 입맛에 썼습니다. 냄새도 독하고 할머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쓴맛은 쓴맛이지 왜 ‘달큰하다’고 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지금 먹어 봐도 청국장 자체의 맛은 쌉쌀합니다. 가을이라 무가 단맛이 나고, 양념으로 넣은 양파가 익어 달큰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님께서는 아마 그런 맛을 총체적으로 표현하셨을 것입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뜰의 모습이 스산합니다. 파초의 잎이 푹 쳐진지는 오래이고, 그렇게 무성하던 모란도 앙상하게 가지만 남았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도 겨울이었던가, 뜰에 가득 모란이 줄기만 남았었습니다. ‘석년(石年)’이라고 쓴 돌기둥 기억이 납니다. 그 돌기둥은 일종의 해시계였다고 합니다. 추사 선생께서 돌기둥의 그림자를 보고 하루의 때를 짐작하셨던 것입니다. 모란의 스산한 모습을 보면서 봄이면 황홀했을 모란꽃 상상도 했고, 선생의 굴곡이 많은 삶도 생각했었습니다.

 

모란꽃은 향기가 꽃치고는 텁텁합니다. 모란은 순이 올라올 때부터 꽃이 필 때 까지가 좋습니다. 봄비에 장독가의 모란이 돋아 오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고 시입니다. 목월 시인의 ‘봄비’라는 시는 그것을 읊었습니다. ‘…젖은  담모롱이/곱게 돌아서/모란움 솟는가/슬픈 꿈처럼’으로 끝납니다. 공주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셨던 유종호 교수께서 이 시가 어떻게 써졌는지, ‘시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하셨습니다. 모란의 시인, 김영랑은 아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예순날 마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모란이 지면 봄이 갑니다. 지난봄에도 그렇게 모란꽃이 폈다가 졌고, 봄이 갔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쓸쓸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래 된 친구로 부터 전화를 받기도 하고, 갑자기 쾌쾌 묵은 어떤 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내게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인가. 아, 그게 정말 그랬었던 것인가’라고, 수 없이 탄식도 해봅니다. 모란의 스산한 모습이 좋은 시절을 다 보낸 삶을 쓸쓸하게 이일저일 떠오르게 합니다. 저의 동네 입구에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회관 어귀에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계십니다. 새로 난 자전거전용도로의 종점이기도해서 시내에 사시는 분들도 오셔서 쉬십니다.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입니다. 동네어른들께서는 마을양노원회원이 20명은 되어야 시로부터 지원을 더 많이 받는다고, 저에게 언제 만 65세가 되느냐고 여쭈어 보십니다. ‘저는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라고 답변은 드렸지만, 솔직히 입맛이 썼습니다.

 

우리의 삶도, 꽃과 나무들처럼, 분명히 좋은 때가 있었습니다. 놀고, 공부하고, 이성을 생각하고, 결혼하여 아들 낳고 딸 낳고, 돌이켜 보면, 하나 같이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일들을 어디 모란이 꽃을 피우는 일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더 황홀하고, 더 치열한 순간들 아니였습니까. 지난여름, 잎만 무성한 모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란이 꽃을 그렇게 눈부시게 피웠으면 됐지, 또 그렇게 졌으면 됐지, 왜 그렇게 끈질기게 잎들은 무성한 것일까.’라고. 그리고 이내 생각이 났습니다. 모란이 꽃을 떨어뜨리고도 얼마만큼 치열하게 뿌리 깊이 자양분을 축적하는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붉은 꽃보다도, 이듬해 더 아름답게 꽃을 피우기 위하여 여름내내 자양분을 축적하는, 거친 푸른 잎들이 더 가치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절들을 살았습니다. 궁핍한 시절, 박용래 시인이 쓴 시를 한 편 보겠습니다. ‘자욱이 버들꽃 날아드는 집이 있었다./한낮에 개구리 울어쌓는 집이 있었다./뉘우침도 설레임도 없이/송송 구멍 뚫린 들창/안개비 오다마다 두멧집이 있었다.(’두멧집‘ 전문) 저의 부모님 세대들은 문종이 살 돈이 없어서 송송 구멍 뚫린 들창을 두고 살았습니다. 집안의 가장이라고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가 경제적 능력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모내기철에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 초여름의 뻐꾸기 울음소리 속에는, 그 시절 춘곤기의, 이 땅의 수 많은 가장들의 ‘뉘우침도 설레임도 없는’ 회한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그 시절에도 봄이면 모란꽃은 장독가에 기대어 피었고, 작약꽃은 피를 토하는 듯 붉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향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의 삶에서는 향긋한 꽃향기가 난다면, 나이든 사람에게선 구수한 체취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꽃과 열매의 차이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꽃향기가 설레임과 유혹의 냄새라면 열매의 향기는 안정과 휴식의 냄새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밥을 짓은 냄새가 그렇습니다. 냄새를 뜻하는 한문글자, ‘향(香)’을 뜯어놓으면, ‘솥(曰)에 벼(禾)가 익는 모습’ 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스스로 안으로 내공이 쌓여서 ‘무언가 구수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모든 동식물들이 갖는 어떤 공통된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가을이면 매콤한 배추 꼬투리에도 단맛이 베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삶에도 구수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삶의 향기를 한번 맡아 보십시오.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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