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삶을 호사롭게 가꾸어 꾸밉시다

 

    <칼럼>삶을 호사롭게 가꾸어 꾸밉시다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날씨는 춥고,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어디서 일이 꼬였는지, 우리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나날이 새롭고 보람차야 합니다. 맑고 향기로워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을 꾸밀 수는 없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을 호사롭게 가꾸어 꾸며봅시다.

 

우리는 모두 복(福)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원래 ‘복(福)’이라는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복(福)’는 ‘시(示)’와 ‘복(畐)’이 합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시(示)’는 제사상(丁)에 제물(一 )이 놓여 있고, 피나 술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八)이고, ‘복(畐)’은 두 손으로 술병을 받쳐서 올리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복(福)’은 받는 것이 아니고, 제사상에 술을 따라 올리는 행위를 묘사한 상형입니다. ‘복(福)’은 누구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고, 제사를 모시거나 웃어른을 공경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인사를 하려면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가 옳은 표현인 셈입니다.

 

옛 사람들에게 ‘의식주(衣食住)’란 그때그때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까지 직접 옷감을 짜서,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세탁은 잿물을 걸러 썼고,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 됐었습니다. 먹는 음식도, 사는 집도, 겨우겨우 해결했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우리들의 삶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라는 노력을 웬만큼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들의 삶을 호사스럽게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 상태에서 조금만 바꾸면, 훨씬 잘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시류나 유행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각종 유명 브랜드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겉치장보다는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남들이 어떻다고 덩달아 흉내를 내고 따라서 할 일이 아닙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저 사람들을 따라 갑니까. 저 사람들이 나를 따라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아부나 사대주의는 역사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줏대 없이 시류에 휩쓸리는 것도 일종의 아부요, 사대주의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소신을 갖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분수에 맞지 않게 겉치장에만 열중하는 사람은 참으로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입니다.

 

교육이 문제입니다. 공교육이 무너졌고, 사교육비가 서민들의 생활을 옥죈다고 야단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공교육이 무너졌고, 어떻게 해서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것 입니까. 학교-학부모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학교는 보충수업부터 없애야 합니다. 지역 특성에 맞게 학교별로 특성화된 교과-교육과정대로 수업만 해야 합니다. 초중등학교 임용고사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학교에는 그렇게 임용된 우수한 교사들이 있습니다. 모든 교과목에, 예체능계를 포함해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뒷받침을 해 줄 인적자원이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학부모님들께 여쭙겠습니다. 자녀들을 왜 학원에 보내십니까? 학교를 못 믿으십니까? 아마 그렇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학교나 학부모나, ‘공부하는 방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공부는 선생이 붙잡고 일일이 가르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끝임 없이 학습동기를 유발하고 격려하는 것이 선생의 역할입니다. 꼼짝달싹 못하게 억지로 붙들어 둔다고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정신을 돌아봅시다. 민주주의는 시민정신이 바탕 아닙니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주위를 살펴보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만 편하고 잘 살아보겠다고 해봐야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혼자만 승용차의 라이트를 밝게 높이고 다니십니까. 평소에 깜박이는 제대로 넣고 운전하십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깜박이를 넣고 다니지 않는 사람과는 앞으로 상종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정치가들만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사실 정치가가 따로 있습니까. 어찌어찌해서, 잠시 완장을 차고 당번을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은, 무슨 직책이든지, 한 번 맡겨 봐 주면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무슨 완장을 찼다고 설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시민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직책을 맡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스스로 욕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술과 학문에 대해서 보다 진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큰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잘 먹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북한 동포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싶다’라는 소망과 비슷합니다. 의식주는 웬 만큼의 수준에서 해결하고, 삶의 가치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뜰에 꽃은 왜 심습니까.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철학자나 과학자나 예술가가 아니어도 어떻습니다. 그들의 가장 빛나는 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예술가보다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학문과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호사는 스스로 감탄하며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그렇게 호사롭게 가꾸어 꾸며봅시다.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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