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두장사가 아닐세.”
‘인사는 짝수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이 인터넷에 떴습니다.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내용인즉 어느 초등학교의 구린 교장선생님 얘기였습니다. 촌지 40만원을 받고 부족하다며 그렇게 유식하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30만원을 더 바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산수시간에 짝수 홀수를 가르치면서 쓸 수도 없는 얘기 같았습니다. 아닌가요, 그 분들이 짝수 홀수를 모르실 리가 없고, 아마 그게 10만 원 권 수표였던 모양입니다.
각 물체에 어떤 특질이 있듯이, 각 시대에는 어떤 독특한 각 시대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물체에는 ‘고유진동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고유진동수와 비슷한 진동에 물체들은 덩달아 함께 진동을 합니다. 자기의 진동수와 같으면 말할 것도 없고, 간단한 분수배율이면, 울림이 다를지라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울립니다. 바로 음악에서 화음의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시대 정신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시대정신에 맞고 어울리는 주장일수록 호응들을 합니다. 앞선 정치가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먼저 압니다. 그들의 욕구를 대신 부르짖어 주어서 우레 같은 박수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비슷한 원리는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데도 쓰입니다. 삼백여 년 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 제작된 바이올린 명기들은, 현 시가로, 수 십 억 원이 넘습니다. 희소성도 있겠지만, 그만큼 소리가 잘 나기 때문입니다. 명기들의 제작기법은 아직도 신비에 쌓여있지만, 새로운 사실들이 가끔 알려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판의 재질이나 두께보다, 부분적 고유진동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판을 가볍게 두드리니, 명기들은 음정이 일정하게 맞추어 배열되어져 있더라고 합니다. 음정에 따라, 바이올린이 어느 부분인가 울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 잘 아시다시피, 초중등학교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입니다. 각 학교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시장 뿐만이 아닙니다. 김문수 경기지사를 비롯하여, 말께나 하는 여권 인사들의 생각이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자문자답을 해봤습니다. 국민들의 표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까닭에서 그러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면 몰표가 쏟아질 것이라고 믿는 구석이 있을 텐데, 과연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이 시대’와 ‘이 시대의 정신’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입니까. 세대와 사회적 계층에 따라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이 6.25전쟁, 전쟁후의 궁핍, 유신독재, 5.18-민주화운동, 오일쇼크, IMF 구제금융, 등등을 겪었느냐, 겪었다면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겪으셨습니까. 집에서 궁핍했던 시절 얘기를 자주 했었던가, 중학교에 다니던 딸아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옛날에도 국수 있었어요?” “음, 있었지.”하고 말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민주화가 어떻고 얘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금테 두른 가문’이라는 기획기사가 있었습니다. 세계1, 2차 전쟁으로 부가 해체됐었는데, 다시 봉건시대처럼, ‘상속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얘기였습니다. 범세계적으로 재벌들이 3세대로 경영을 넘기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속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상위 10%의 상속금액이 하위 10%의 상속금액보다, 2003년 통계로, 2100배 많다고 합니다. 가진 사람들은 빼앗기지 않고, 보존만 하면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라고 주장하는 까닭이 짐작 되십니까. 오늘날 이 시대의 정신을 다시 잘 살펴 볼 일입니다.
시대정신도 그렇고, 숫자 얘기도 관련이 있어서, 운재 윤제술(芸齊 尹濟述 1904-1986 김제)선생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운재(芸齊)’라는 호는 유재 송기면(裕齊 宋基冕 1882-1956 김제)선생께서 지어 주셨답니다. ‘운(芸)’은 ‘궁궁이 풀’인데, 뿌리로 풀을 쒀서 책을 제본을 하면 책에 좀이 안 슬었다고 합니다. 동경고등사범영문과를 나오셔서, 교육계에 오래 계셨고, 국회의원만 6선을 하셨습니다.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여쭈었답니다. “남성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인데, 방과 후에 교내 시찰을 하다가 어디서 쿵쿵하는 소리를 들었네. 어둑어둑한 교실에서 어떤 학생이 혼자 교단을 고치고 있더군. 다 고칠 때 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웬일이냐고 물었네. 교단이 삐덕거려서 집에 있는 연장을 가져와 고쳤다고 하더군. 그 학생 이름도 못 물어봤는데, 어디서 잘 사는지, 가끔 생각이 난다네.”라고 하시더랍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순박하던 시절이 있었나 싶은 얘기입니다.
선생님의 결혼한 생질녀가 외국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보자고 하셨답니다. 동생이 부부동반으로 딸과 사위 외손녀까지 데리고 국회부의장으로 계시는 친정오빠 집을 찾아 갔답니다. 선생님은 ‘댓 이파리 글씨’로 유명하십니다. “젊은 인재들이 공부를 하려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참 좋다. 그러나 꼭 돌아와야 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작은 연못의 물고기는 바다를 그리워하나, 떠도는 들새는 집을 그리워한다.”라는 뜻의 한시를 써 주시더랍니다. 그때 여동생이 “한 장 더 써 주세요.”라고 부탁을 하자, 운제선생님이 그랬답니다. “허허, 나는 구두장사가 아닐세.”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너무 오랜 만에 들렀습니다. 아이디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저도 짝수 홀수 이야기를 뉴스에서인지 본 것 같습니다. 참 세월이 많이 변했고, 많은 부조리가 고쳐졌습니다만, 어떤 부조리는 아직도 꿈쩍도 않고, 어떤 부조리는 새로 생겨났습니다. 약삭빠르게 움직이고 제 몫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 능력있다 평가 받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소처럼 순박하면,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되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아닌데, 라고 되뇌이며, 아닐 거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해봅니다.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셨다고 소식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독짐에는 자주 들리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