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여 다시 한 번’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온갖 빛깔의 꽃들도 황홀하지만, 온 산 가득한 연초록 신록 또한 눈이 부시고 감격적이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수(繡)를 많이 놓았다. 오랫동안 수를 놓다가 눈이 피곤해지면 창밖에 푸른 신록을 바라봤다고 한다. 이영도(경북 청도, 1916-1976)시인의 수필집 ‘춘근집(春芹集, 1958)’에 있는 얘기다. ‘봄 미나리’라는 뜻의 ‘춘근(春芹)’도 좋고, 천경자 화백이 장정을 하고 초정 김상옥 시인이 제자를 쓴 책이 참 어여뻤다. 옛날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조침문(弔針文)’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어떤 여인이 끊어진 바늘을 두고 쓴 소위 규방문학으로, 남학생들도 재미있게 배웠었다. 저의 할머님께서도 헝겊에 바늘이 잘 안 나가면 머리에 바늘 끝을 몇 번 문지르셨다. 머리의 기름기 때문에 바늘이 신기하게 잘 나갔다. 오월의 눈부신 신록을 보노라면, 할머님에 대한 기억과 함께, 평생 한복을 곱게 입으셨던 이영도 시인이 수를 놓으시다가 창밖을 보며, 바늘로 쪽진 머리를 긁는 모습이 떠오른다.
오월은 기념일과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의 날들이 있어서 가족행사가 이어지고, 학교에 있다 보면, 스승의 날도 기념식을 갖는다. 제자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라고 노래를 불러 줄 때 마다, 몸 둘 바를 모르곤 한다. 과연 학생들을 얼마나 잘 지도했었나, 본인은 얼마나 스승님을 공경했었나, 하는 자괴감 때문에서 그렇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듯이, 학생들을 가르쳐봐야 스승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공주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대학에 입학해서, 뭣도 모르고, 행사라면 이것저것 다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쫓아다녔을 때다. 공주 공산성 쌍수정 앞에서 신입생환영회가 열렸는데, 그때 학과장이셨던가, 교수님 한 분이 박수를 받으시고 노래를 한 곡 뽑으셨다. 바로 현인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꿈이여 다시 한 번’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가끔 ‘그 분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고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MB정부 들어서서 ‘소통(疏通)’이라는 말이 국민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4대강 공사 강행, 행정복합도시 재추진, 동남권 신공항 건설 취소, LH공사 입지 선정, 국가과학벨트 계획 변경 등등, 어떻게 하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지 상황이 기가 막힌다. 너도 나도 ‘소통(疏通)’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소통(疏通)’이라는 말이 별로 좋은 뜻은 못 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고(疏),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린다(通).’라는 말이 오늘날 가당치가 않기 때문이다. 어쩌랴, 그냥 쓰자. MB정부의 소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정부에서 발표하기 전까지는 ‘전혀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하다가 ‘위원회에서 합법적으로 결정 됐다.’면 끝이 다는 식 아니냐.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아직 LH공사의 입지가 결정되는 않았지만 뻔하다. 처음부터 ‘국가균형발전을 위하여 LH는 전북에 일괄 배치해야한다’는 주장도 못한 우리의 신세가 애처로운 뿐이다.
‘꿈이여 다시 한 번’, 그렇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꿈을 꾸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것부터가 꿈을 꾸는 것이다. 가까이는 ‘엊그제 심은 곰취는 얼마나 자랐을까’부터, 멀리는 ‘언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쉴 수 있는 별장이라도 지어 볼까’까지, 꿈은 터무니없을 수도 있고, ‘자유’ 그 자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무슨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 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꿈을 쫒아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꿈을 보면 그 사람 자체를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현재는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 1940- )의 글을 읽었다. 고아로써 이모에게 입양되어 음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쓴 일종의 짧은 자서전인데, 감동적이었다. 심리적인 충격과 질병으로 9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는데, ‘음악을 배우고 싶냐’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며 말문이 터졌다고 한다. ‘어떤 것에 대한 꿈과 열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라고 새삼스럽게 놀랐다.
수학을 가르치다가 보면, 인류가 얼마나 사고의 고정적인 틀을 깨는데 치열하게 투쟁해 왔는지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같다’는 것이 무엇인가, ‘계산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센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등등 이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인류의 진화’는 ‘사고의 유연성이 신장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문학이나 미술, 음악 모든 학문과 예술이 기본적으로 개체의 특수성과 전체의 일반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사고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사의 글씨, 피카소의 그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모두가 고도의 미적 자유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인간정신의 오랜 진화과정으로 얻어진 산물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오월, 신록이 눈부시다. 아득하게 흘러간 옛 노래가 생각난다. ‘꿈이여 다시 한 번…’ 가만히 불러 보자. 가사가 참 좋다. 공산성에서 열창하시던 은사님 생각도 난다. ‘백합꽃 그늘 속에 그리움 여울지어 하늘에 속삭이니,’ 그간 LH공사를 전북에 유치하기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분들께도 가사 내용이 끝내주게 어울린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목메어 우네.’ 우리들에게 LH유치는 하나의 기도였고, 가히 열망이었다. 신경림 시인이 ‘헐벗은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은 시인’이라고 칭찬한 권태응(1918-1951)이라는 아동문학가가 있다. 1968년에 세운 시비에는 ‘감자꽃’이라는 시를 새겼다. 동시지만, 내용이 참 좋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