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28> 양심과 흑심 사이에서

드러내놓고 남의 글이나 작품을 가져다 쓰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른바 인용이나 원용이다. 그러나 몰래, 그것도 마치 제 것인 양 쓰는 경우를 표절이라고 한다. 사실 말을 좋게 해서 표절이지 도둑질이다. 지식이나 아이디어라고 해서 훔쳐도 된다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 국회의원 당선자의 박사논문 표절 시비 때문에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그는 현 IOC 선수위원이자 한때 올림픽 태권도의 금메달리스트로 각광받던 인물이다. 바로 문대성씨다. 올림픽 결승장면만 기억한다면 그는 듬직했다. 진정 스포츠맨으로써 정정당당했고 훈훈한 모습으로 믿음을 줬던 그였다. 그러나 이번 총선 출마 전후를 즈음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학교수에게 꼭 박사 학위가 필요한 요건이었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었어야 했다. 그런데 문씨는 그렇게 안 했다. 게다가 초등학생이 봐도 분명한 베껴 쓰기를 아니라고 강변한다. 이론적 배경을 인용했다는데 글자 하나 다른 부분이 없다. 더구나 명백한 맞춤법 오류까지 고스란히 옮겼다. 아무리 옮겨 쓴다고 틀린 맞춤법까지 따라 하는가. 그러고도 도리어 큰소리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다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냔다. 그에게 박사 학위가 단지 학문에 대한 성취욕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의문스럽다.

문제는 그가 국회의원에 당선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흑심의 소유자가 대학강단에서 버젓이 박사로서 행세해왔다. 더구나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것도 정당하고 떳떳한 경쟁을 부르짖는 스포츠과학 분야에서다. 단지 그만의 양심불량이라면 그다지 걱정이 크지 않다. 그처럼 낯 두껍게 남의 논문을 베껴 쓰고도 전혀 훔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뻔뻔함을 만에 하나 학생들이나 박사학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본받지 않을까 적이 걱정된다.

일찍부터 이런 유의 도둑질이 적지 않았다. 허구한 날 표절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지식도둑질의 연원은 깊다. 그저 지식이나 생각을 우러르기 때문이라면 우려스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양심을 외면한 채 실제 이상으로 그럴싸하게 또는 고상하게 보이려는 허세 탓이다.

문씨가 현직 교수라면 책임 있게 논문 표절 내지는 대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물러나야 했다. 차라리 그것이 떳떳하고 길게 사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문씨는 끝끝내 논문을 인용 했는데 인용 부분을 표기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우겨댄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설명이라고 판단했을까. 제 아무리 국회의원직이 탐나고 빗나간 현시욕에 매몰됐다고 해도 ‘참으로 이건 아니올시다’이다. 설사 초등학생이라 해도 이런 치기 어린 변명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국가를 대표하는 IOC 위원이다. 때문에 도덕성과 스포츠맨십을 강조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일원으로 막중한 책무가 있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일로 인해 빚어진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자기가 판단하고 정리해야 할 상황임에도 그저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무마시킬 생각만 했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갑작스레 기자회견도 취소했고 급기야 탈당을 선언했다. 매우 피동적이고 떠밀려서 처신하는 이런 모습은 결코 지역구민의 ‘대표선수’로서 미덥지 못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런 그의 모습은 왜인가. 바로 자신을 속이고 한술 더 떠 남까지 이기려 든 탓이다.

자기때문에 일어난 소란을 남이 결정하도록 떠넘기는 모습은 정녕코 아니다. 한때 빼어난 운동선수로서의 모습도, 엄정한 교수로서의 모습은 더욱 아니고, 공정한 IOC위원으로서의 모습도 결코 아니다. 단지 허망한 욕구를 어떻게든 채우고자 하는 비열한 정치모방생의 구차한 모습일 뿐이다.

결국 외국 언론에서까지 표절을 문제 삼고 있다. 미국 언론 시카고 트리뷴이 문대성 당선자와 팔 슈미트 헝가리 대통령을 비교하며 “한국은 표절 천국”이라고 비난했다. 나아가 마침내는 IOC 선수위원으로서의 자격논란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슈미트 대통령은 논문 표절 논란 때문에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대통령직도 물러나는 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직이 뭐라고 그처럼 안달복달하는지 참 안됐다. 슈미트 대통령과 문씨는 여러 모로 닮은 꼴 처지였다. 논문표절에서부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이다. 하지만 다른 것은 비슷할지 모르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태도는 영 딴판이다.

슈미트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가통합을 이끌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문제로 국가가 분열되고 있다”며 “대통령직을 사퇴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잘못을 시인한 뒤 깨끗이 사라졌다. 그러나 문씨는 어설픈 변명과 구질구질한 자기두둔으로 일관했다. 스포츠맨으로서 최고의 덕목이랄 수 있는 페어플레이 정신마저 걷어찼다. “정치로 감동을 주고 체육계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정치에 입문했다”던 처음의 다짐마저 뒤엎었다.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러니 문씨에게 앞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문씨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얻은 ‘문도리코’ ‘컨트롤브이’라는 등의 별명을 곱씹으며 반성해봐야 한다. 단지 그가 싫기 때문에 악의적으로 붙여준 별명인가. 그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문씨가 해야 할 결정은 간단해진다.

문대성 당선자가 밝힌 입장들은 하나같이 자기합리화, 심하게 말하면 독선이다. ‘복사 수준의 대필’이라며 교수직 사퇴를 주장한 학술단체협의회에 대해서 문씨는 작심하고 이 단체를 마치 무슨 사이비단체나 되는 양 깎아내렸다. 아직도 뭐가 표절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우겨대는 부분은 아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면 왜 굳이 탈당을 선언하는가. 그것은 표절이라는 국민대학교의 발표에 대해 비난을 피해보겠다는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의 출당 등 징계에 앞서 선수치고 도망가겠다는 약은 수 아닌가.

한 대학교수는 자신이 국제학술대회 논문 심사위원장 시절 경험을 밝히며 표절이냐 아니냐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논란의 두 논문을 다 읽어봤는데 각기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관련은 있지만 같은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두 논문의 서술 구조와 해결 방안 제시 등에 상당한 유사점이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그는 이 논문을 표절이라고 주장한 심사위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용의 일치성만 표절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의 프레임을 베낀 것’ 역시 표절”이라는 답변이었다. “같은 문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독특한 사고 전개가 바로 그 원 논문 저자의 특징이고 그 때문에 세계적 학자라고 인정받는 것이며 제출 논문은 그 프레임에 자신의 문제를 끼워 맞춘 것이므로 표절로 본다”는 의견이었다.

심사위원장은 ‘게재 거절’의 평과 그 이유를 논문을 제출한 K교수에게 보냈다. 개인적으로 심사위원장의 선배인 K교수의 첫 마디는 의외로 깔끔했다. “미안하네. 내가 실수한 것 맞아. 난 이 정도면 표절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양심 불량이지.”

사실 K교수는 국내외에 논문 많이 내기로 이름이 있는 학자여서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정말 의외였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원논문을 읽었다. 문제의 전개가 너무도 명확하고 깨끗해 나도 그렇게 써 보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심사위원장이 하나 더 물었다. “헌데 왜 그 원논문을 참고문헌에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대답은 단순명쾌했다. “그게 내가 떳떳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러운 ‘표절로 인한 탈락’을 받아들이는 이유라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걸세. 그간 국내외에 150편 이상 논문을 썼는데 질적으로 모자라 탈락한 경우는 있었어도 이번 경우는 내게도 충격이야. 많이 반성했네.”

그 심사위원장은 말한다. “서술의 체계와 패러다임이 닮았을 뿐, 같은 표현도 없고 다룬 문제도 서로 연관은 있지만 분명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학자들은 ‘생각의 복제’는 도둑질이라고 여기고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고 부끄러워한다”

물론 문씨에게 K교수처럼 양심적이고 엄격하게 학자로서의 정직함을 요구하기에는 애초부터 기대난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말대로 운동선수출신으로는 화려했을지라도 미상불 엄정한 학자의 기준을 충족하기에는 무리이겠기에 말이다.

하물며 운동을 병행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주장 또한 해괴하기 짝이 없다. 그 변명의 수준도 그렇지만 이것은 중대한 실언이다. 스포츠인으로 공부를 계속하는 모든 사람들을 폄훼했다고도 볼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인 출신들은 논문 인용을 할 때 명백한 맞춤법 오류까지 고스란히 따라한다는 말인가. 문씨를 제외하고 스포츠인이라고 머리가 나쁠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더불어 같은 어법대로라면 학위과정을 하는 모두에게 다 핑계가 생긴다. 회사를 다니며 학위를 하는 사람은 ‘회사 일을 병행하다보면…’ 연예인은 ‘공연을 병행하다보면…’ 의사는 ‘환자를 보다 보면…’ 식으로 이유를 댈 것 아닌가. 그러면 오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지 의아하다.

자신 때문에 빚어진 논란을 놓고 딴죽을 거는 태도도 역겹다. 이번 기회에 체육계든 정치권이든 논문에 문제 있는 사람들 다 검증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문씨가 이런 문제를 제기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 더욱이 나 말도고도 다른 사람들 모두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은 물귀신 수법일 따름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럭저럭 박사학위를 얻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문씨가 표절로부터 자유로워지는가. 이번 총선에서 문대성씨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정정당당 문대성” 그렇다면 무엇이 정정당당한 것인지 진정 묻고 싶다.

하기는 박정희씨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유신개헌을 한다고 했다. 게다가 전두환씨도 쿠데타 직후에 ‘국가의 안녕을 위해’ 운운했다. 과연 그런가. 천하의 거짓말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당당한 것인지 그렇게도 분간이 안 되니 막무가내다. 하여 그런 두꺼운 얼굴에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거다.

이처럼 도덕성이 의문스러운 사람에게 국민의 대표라는 직책을 맡길 수 있는가. 아무리 지역구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강변한들 당시는 표절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다. 이제는 표절이라고 대학측이 밝힌 만큼 의원직 사퇴가 마땅하다. 그것이 문씨 개인뿐만 아니라 부산 사하지역구민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문씨가 한 가지 알아둘 게 있다. 어떤 것은 모방과 표절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다른 것은 창조와 진일보라는 칭찬을 받는다. ‘모방’과 ‘창조’의 차이는 무엇인가? 피카소의 말이 답이 될 것이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그대로 복사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Good artists copy, but great artists steal.)”고 말했다. 잘 새기자. 굿과 그레이트의 차이를… 결국 위대한 예술가는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 ‘내 것’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요는 이번 소란이 한 개인의 망신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영부영하다가는 세계적인 나라 망신을 자초하게 생겼다. ‘표절 천국’이라니, 그렇잖아도 힘든 팍팍한 세상에 ‘도둑놈 왕국’이라는 끔찍한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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